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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9.21)의 독서 말씀] 다르기 때문에 하나가 될 수 있다 : 에페소서 (4,1-7.11-13)

제임스
21시간 9분전 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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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람이 함께 일을 하다 보면 같은 문제를 놓고도 생각과 일하는 방식이 참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어떤 사람은 앞장서기를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뒤에서 조용히 돕는다. 빨리 결정하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충분히 생각한 뒤 움직이는 사람도 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책을 집필할 때도 의견이 달라 힘들 때가 있고, 어떤 사람은 산업체의 경험을 자세히 쓰자하고 어떤 사람은 기본에만 충실히 이론적인 것 중심으로 쓰자하고 또 어떤 사람은 분량을 좀 더 줄이자고 하고 참으로 어렵다. 성당에서 함께 봉사할 때도 역할 분담을 각자의 희망대로 하자하고, 어떤 분은 리더가 정하는대로 따라 하자하고, 또 회의를 통해 충분히 논의한 후 하자 한단다. 그냥 나 혼자 하는 것보다 오히려 어려울 때가 있다.

우리는 흔히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하나가 된다는 것은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일까.

오늘 바오로 사도는 일치를 이야기하면서 오히려 서로의 다름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저마다 은총을 받았습니다.”

어떤 이는 사도로, 어떤 이는 예언자로, 복음 선포자로, 또 어떤 이는 목자나 교사로 세워졌다고 말한다.

모두에게 똑같은 일을 맡기신 것이 아니다. 사람마다 받은 능력도 다르고 역할도 다르다. 그런데 바로 그 다른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몸을 이룬다.

우리 몸도 그렇다.

눈과 귀가 하는 일이 다르고 손과 발의 역할도 다르다. 모든 기관이 똑같은 일을 한다면 몸은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

다르기 때문에 오히려 하나의 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가정이나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부부의 성격이 다르고 부모와 자녀의 생각이 다르다. 직장이나 교회 공동체에서도 경험과 능력, 가치 기준과 판단이 서로 다르다.

문제는 다르다는 데 있지 않다.

나와 다른 것을 틀렸다고 생각하는 순간 갈등이 시작된다.

그래서 바오로는 일치를 말하기에 앞서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강조한다.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 주며

모두가 내 생각과 같다면 인내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보고, 내가 부족한 부분을 누군가는 잘 해낸다.

그래서 공동체에는 무엇보다 겸손이 필요하다.

내 생각이 전부는 아니다.”

이 한마디를 받아들이는 데서 일치는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조직생활을 하다 보면 능력이 뛰어난 사람만 모였다고 좋은 조직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각자의 능력을 인정하고 필요한 자리에 세워 주며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 때 조직은 건강해진다.

오케스트라도 그렇다.

바이올린이 아무리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고 모든 악기를 바이올린으로 바꿀 수는 없다. 서로 다른 악기들이 저마다 자신의 소리를 내면서도 하나의 곡을 바라볼 때 비로소 아름다운 음악이 된다.

일치는 같은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소리로 하나의 음악을 만드는 것이다.

오늘 말씀의 마지막에는 성숙한 사람이 된다는 표현이 나온다.

성숙한다는 것은 단순히 나이가 많아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젊을 때에는 내 생각을 관철하는 것이 능력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살아갈수록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나와 다른 생각에도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음을 인정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게 된다.

그래서 성숙은 다른 사람을 나와 같게 만드는 능력이 아니라, 나와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가족이나 친구에게도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내 방식대로 바꾸려 할 때가 있다.

당신을 위해서 하는 말이야.”

그러나 그 말 속에 당신도 나처럼 생각해야 한다는 마음이 숨어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랑은 상대방의 다름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다름을 품으면서 함께 걸어가는 것일 것이다.

오늘 나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나와 다른 사람을 얼마나 받아들이며 살아왔는가?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다 사람을 잃은 적은 없었는가?

바오로가 말하는 일치는 획일성이 아니다.

한 분이신 하느님 안에서 서로 다른 은총을 받은 사람들이 자신의 몫을 다하면서 서로를 인정하고 함께 성장해 가는 것이다.

내가 가진 것으로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채워 주고, 나의 부족함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하나의 몸을 이루는 삶이다.

오늘 말씀을 마음에 새겨 본다.

다르다고 틀린 것은 아니다.
다르기 때문에 서로에게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서로 다른 사람들이 겸손과 온유와 인내로 손을 잡을 때, 비로소 우리는 에서 우리라는 하나의 몸으로 성장해 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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