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독서 말씀] 성벽에는 문이 있어야 한다 : 요한묵시록 (21,9ㄴ-14)
본문
집을 지을 때 벽은 추위와 비바람을 막을 수 있고
가족의 생활도 보호할 수 있다.
아무리 튼튼한 집이라도 문이 없다면 그곳에서 살아갈 수 없다.
벽은 지켜 주지만, 문은 사람을 만나게 한다.
요한 묵시록에서 천사는 요한에게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을 보여 준다.
그 도성은 하느님의 영광으로 빛나고 수정처럼 맑은 벽옥처럼 아름다웠다.
크고 높은 성벽이 있었고 그 성벽에는 열두 개의 문이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문이 한쪽에만 있지 않다는 것이다.
동쪽에도 세 개, 서쪽에도 세 개, 남쪽과 북쪽에도 각각 세 개가 있었다.
어느 방향에서 오더라도 들어올 수 있는 문이 있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마음에도 성벽과 문이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마음에 벽을 쌓는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으면 다시 상처받지 않으려고 거리를 둔다.
믿었던 사람에게 실망하면 쉽게 사람을 믿지 않는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는 마음의 문을 닫기도 한다.
어느 정도의 벽은 필요하다.
그러나 벽만 높아지고 문이 사라지면 문제가 된다.
상처는 들어오지 못할지 모르지만 사랑도 들어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조심해야 할 것 가운데 하나가
마음의 문을 닫는 일이 아닐까 싶다.
오랜 경험이 쌓이면 나름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이 생긴다.
그것은 지혜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내 생각이 옳다.”는 단단한 성벽이 된다.
젊은 사람들의 생각을 들어 보기 전에 판단하고,
새로운 방식을 접하면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거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느님의 도성에는 사방으로 문이 나 있었다.
나와 같은 방향에서 오는 사람에게만 열린 것이 아니다.
동쪽에서 오는 사람도, 서쪽에서 오는 사람도 들어올 수 있다.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 한 도성 안에서 만난다.
우리의 공동체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성당에 오래 다닌 사람도 있고 이제 막 세례를 받은 사람도 있다.
신앙이 깊은 사람도 있고 아직 의심하며 길을 찾는 사람도 있다.
하느님의 도성에는 그들을 위한 문이 모두 마련되어 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는 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성벽 아래에는 열두 개의 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양의 열두 사도 이름이 새겨져 있다.
문은 활짝 열려 있지만 기초는 단단하다.
이것이 참 중요하게 다가온다.
모든 사람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아무런 기준 없이 살아간다는 뜻은 아니다.
진리와 믿음이라는 튼튼한 초석 위에 서 있으면서도
사람을 향한 문은 열어 두는 것이다.
원칙은 단단하되 사람에게는 부드러운 것이여야 하며,
믿음의 기초는 굳건히 하되 마음의 문은 넓게 열어 두는 것이다.
내 인생에도 여러 방향의 문을 통해 들어온 사람들이 있었다.
학교에서 만난 동창도 있고 제자도 있었고, 연구를 통해 만난 동료도 있었으며,
성당에서 만난 교우와 여행길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도 있었다.
그 만남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만일 내가 익숙한 사람에게만 문을 열었다면
그 많은 인연과 배움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 요한이 바라본 거룩한 도성을 마음속에 그려 본다.
높고 튼튼한 성벽이 있지만 사방에는 활짝 열린 문이 있다.
그리고 내 마음의 성에도 문이 몇 개나 열려 있는지 돌아본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도 문이 열려 있는가.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자리를 내어 줄 수 있는가.
오래전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 돌아온다면 작은 문 하나라도 열어 줄 수 있는가.
하느님의 도성은 벽이 높아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튼튼한 기초 위에 있으면서도 사방으로 문이 열려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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