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독서말씀] 끝났다고 생각한 자리에서 : 에제키엘(37,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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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오랫동안 물을 주지 않은 화분을 보면 '이제는 죽었구나' 라고 생각하게 된다.
잎은 모두 떨어지고 줄기는 말라 있다. 흙도 딱딱하게 굳어 있다.
버리려고 화분을 들어 올렸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을 주어 본다.
며칠이 지나도 아무 변화가 없다.
그런데 어느 날 마른 가지 끝에서 아주 작은 연두 빛 싹 하나가 돋아난다.
그 작은 싹을 보는 순간 놀라게 된다.
‘아직 살아 있었구나.’
오늘 독서에서 본 계곡에는 그런 작은 가능성조차 보이지 않았다.
계곡 전체가 뼈로 가득했고 그 뼈들은 “바싹 말라 있었다.”
하느님께서 에제키엘에게 물으신다.
“이 뼈들이 살아날 수 있겠느냐?”
우리라면 아마 쉽게 대답했을 것이다.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에제키엘은 다르게 대답한다.
“주 하느님, 당신께서 아십니다.”
참으로 깊은 믿음의 대답이다.
자신은 모르지만 하느님께서는 아신다는 것이다.
인간의 판단으로 가능과 불가능을 미리 결정하지 않고 마지막 판단을 하느님께 맡긴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이제는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을 만난다.
사업에 실패할 수도 있고, 오랫동안 이어 온 인간관계가 무너질 수도 있다.
건강을 잃거나 자녀의 문제로 마음 아파할 때도 있다.
아무리 기도해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으면 희망마저 말라 버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스라엘 백성도 그렇게 말했다.
“우리 뼈들은 마르고 우리 희망은 사라졌으니, 우리는 끝났다.”
바로 그때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나 이제 너희에게 숨을 불어넣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겠다.”
에제키엘이 말씀을 전하자 흩어졌던 뼈들이 서로 맞춰지고 힘줄과 살이 생기며 살갗이 덮인다.
그러나 아직 살아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이 있었다. ‘숨’이었다.
숨이 들어가자 비로소 그들이 살아나 제 발로 일어선다.
이 장면을 보며 사람에게도 겉모습을 회복하는 것과
진정으로 살아나는 것은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집과 재산이 있고 건강해 보여도
삶의 의미를 잃으면 마음은 메마를 수 있다.
반대로 가진 것은 많지 않아도 희망이 있고 사랑할 사람이 있고 살아갈 이유가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생명의 숨이 있다.
생명은 때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끈질기다.
신앙도 그렇지 않을까.
내가 보기에는 끝난 것 같아도 하느님의 눈에는 아직 끝나지 않았을 수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하느님께서 마른 뼈들에게
“스스로 살아나라”고 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내가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어 너희를 살리겠다.”
회복의 시작은 하느님께 있다.
우리는 모든 문제를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려다 지치곤 한다.
그러나 어떤 순간에는 내가 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하느님께 맡기는 것이 믿음일 수 있다.
“주님, 저는 모르겠습니다. 당신께서 아십니다.”
이 짧은 기도가 필요할 때가 있다.
돌이켜 보면 우리의 삶에도 마른 뼈가 다시 살아난 것 같은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도저히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았는데 시간이 지나 길이 열렸고,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것 같았던 사람과 화해했으며,
실패라고 생각했던 일이 오히려 새로운 길을 열어 주기도 했다.
내가 너무 일찍 ‘끝났다’고 선언해 버린 것은 없는가?
하느님께서 아직 일하고 계시는데 내가 먼저 포기한 것은 없는가?
내가 끝이라고 생각하는 그 자리에서
하느님께서는 다시 시작하고 계실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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