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 하나로 시작한 1년
제임스
2026-08-16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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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겨자씨 하나로 시작한 1년
오늘로 매일의 독서 말씀을 읽고 묵상수필을 쓰기 시작한 지 꼭 1년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쓴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집에 있을 때야 마음먹으면 책상 앞에 앉을 수 있지만 여행을 떠나기도 했고,
출장을 가기도 했으며, 여러 일정이 겹쳐 글을 쓸 겨를조차 없는 날도 있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말씀을 읽고 몇 줄이라도 생각을 정리하며 오늘까지 왔다.
집에 있을 때야 마음먹으면 책상 앞에 앉을 수 있지만 여행을 떠나기도 했고,
출장을 가기도 했으며, 여러 일정이 겹쳐 글을 쓸 겨를조차 없는 날도 있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말씀을 읽고 몇 줄이라도 생각을 정리하며 오늘까지 왔다.
1년이라는 시간을 돌아보니 무엇보다 기쁘고 감사하다.
그러면서 한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과연 이것이 나 혼자의 노력으로 가능했던 일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오래전 전국가톨릭교수협의회 사무총장을 맡아 달라는 박홍 신부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가 생각난다. 당시에는 외부에서 맡고 있던 일도 많았고, 가톨릭신자교수가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인 중소 대학에 몸담고 있던 내가 전국 조직의 큰 직책을 맡는다는 것이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망설이는 내게 신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일단 맡아봐! 그러면 성령께서 알아서 다 해주시니까. 자네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그 말씀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마음속에 남아 있다.
이번에도 그랬던 것 같다.
처음 묵상 글을 쓰기 시작할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래 계속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더구나 내가 쓴 글이 과연 다른 사람의 마음에 얼마나가 닿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성경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도 아니고, 매일의 말씀을 읽으며 내 삶에 비추어 생각해 본 것을
몇 자 적어 나누는 것뿐이었다.
더구나 내가 쓴 글이 과연 다른 사람의 마음에 얼마나가 닿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성경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도 아니고, 매일의 말씀을 읽으며 내 삶에 비추어 생각해 본 것을
몇 자 적어 나누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한 사람에게 보내던 글이 조금씩 여러 사람에게 전해지기 시작했다.
함께 봉사했던 사목위원들, 전국가톨릭교수협의회 회장단, 대학 동창들, 청년 시절 함께했던 주일학교 교사들, 지도교수로 인연을 맺었던 가톨릭학생회 졸업생들, 문화영성강좌 수강생들, 대자들, 성찬봉사로 이끌어 주신 분들, 구역 교우들, 요양원에 계신 분, 가족과 지인들….
어느새 서른 곳이 넘는 카카오톡 개인과 모임에 매일 글을 보내고 있다. 성당 홈페이지에도 올리고 페이스북의 ‘하느님 사랑(가톨릭)’을 통해서도 나누고 있다.
더욱 감사한 것은 그 글을 받은 분들이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또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 주신다는 것이다.
또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 주신다는 것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문득 겨자씨 한 알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눈에 잘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씨앗이다.
그러나 땅에 떨어져 자라면 가지를 뻗고 새들이 찾아와 깃들 만큼 자란다.
내가 시작한 묵상 글도 어쩌면 그런 작은 겨자씨 하나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땅에 떨어져 자라면 가지를 뻗고 새들이 찾아와 깃들 만큼 자란다.
내가 시작한 묵상 글도 어쩌면 그런 작은 겨자씨 하나였는지 모른다.
내가 얼마나 좋은 글을 썼는가는 이제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내 글을 읽은 한 사람이 하루를 잠시 돌아보고,
마음이 힘든 사람이 작은 위로를 얻으며,
한동안 말씀을 멀리했던 사람이 성경 한 구절이라도 다시 펼쳐본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사람이 받은 말씀을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한다면,
그때부터 그것은 이미 내가 쓴 글만은 아니다.
그때부터 그것은 이미 내가 쓴 글만은 아니다.
복음은 그렇게 사람에서 사람으로 건너가는 것이 아닐까.
나는 씨앗 하나를 건넸을 뿐인데 누군가는 그것을 받아 다른 밭에 심는다.
어느 곳에서는 싹이 트고, 어느 곳에서는 꽃이 피며,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열매를 맺을 수도 있다.
씨앗을 뿌린 사람은 그 열매가 어디에서 얼마나 열렸는지 모두 알 필요도 없다.
어느 곳에서는 싹이 트고, 어느 곳에서는 꽃이 피며,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열매를 맺을 수도 있다.
씨앗을 뿌린 사람은 그 열매가 어디에서 얼마나 열렸는지 모두 알 필요도 없다.
1년 전에는 내가 묵상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1년을 지나고 보니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내가 말씀을 쓴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나를 이끌고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닐까.
박홍 신부님께서 오래전에 해주셨던 말씀이 다시 들리는 듯하다.
“자네 힘으로 하는 일이 아니야.”
그래서 오늘은 지난 1년 동안 글을 쓸 수 있었던 것보다,
그 글을 읽어주신 분들에게 더 감사드리고 싶다.
읽어주셨기에 쓸 수 있었고,
함께 나누어주셨기에 작은 글이 내 손을 떠나 더 먼 곳까지 갈 수 있었다.
그 글을 읽어주신 분들에게 더 감사드리고 싶다.
읽어주셨기에 쓸 수 있었고,
함께 나누어주셨기에 작은 글이 내 손을 떠나 더 먼 곳까지 갈 수 있었다.
오늘 다시 작은 겨자씨 하나를 손에 올려놓는다.
앞으로 또 1년을 계속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내일 아침에도 말씀이 주어진다면
그 말씀 앞에 앉아 오늘처럼 작은 생각 하나를 적어보려 한다.
다만 내일 아침에도 말씀이 주어진다면
그 말씀 앞에 앉아 오늘처럼 작은 생각 하나를 적어보려 한다.
씨앗을 뿌리는 것은 내가 할 일이고,
싹을 틔우고 자라게 하시는 것은 그분의 몫이기 때문이다.
싹을 틔우고 자라게 하시는 것은 그분의 몫이기 때문이다.
지난 1년 동안 함께 읽어주시고 또 주변에 전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우리 각자가 건넨 작은 말씀의 씨앗들이 내가 알지 못하는 어느 마음 밭에서 싹을 틔우고 자라,
언젠가 풍성한 복음의 열매를 맺기를 기도한다.
언젠가 풍성한 복음의 열매를 맺기를 기도한다.
작은 겨자씨 하나로 시작한 1년.
돌아보니 내가 걸어온 길인 줄 알았는데,
그분께서 함께 걸어주신 길이었다.
돌아보니 내가 걸어온 길인 줄 알았는데,
그분께서 함께 걸어주신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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