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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제1 독서 말씀] 내 옆의 빈자리 : 이사이야 (56,1.6-7)

제임스
2026-08-15 21:57 19 0

본문


람들이 모이는 자리에는 자연스럽게 작은 무리가 생긴다.
오래 알고 지낸 사람끼리 앉고, 같은 학교나 직장 출신끼리 이야기를 나눈다.
친한 사람 옆에는 쉽게 자리를 내어 주지만 처음 보는 사람이 다가오면 조금 어색해진다.
어느 모임에서 혼자 앉아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서로 반갑게 인사하며 이야기꽃을 피우는데 그 사람은 아는 이가 없는지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다가가 말했다.  
여기 와서 같이 앉으세요.”
별것 아닌 한마디였다. 그러나 그 한마디가 한 사람을 구경꾼에서 공동체의 한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다.
오늘 이사야서에서 하느님께서는 놀라운 말씀을 하신다.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리리라.”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방인은 분명히 ‘우리와 다른 사람’이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혈통이나 출신이 아니라 당신을 사랑하고 따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거룩한 산으로 인도하겠다고 말씀하신다.
하느님의 집에는 ‘당신은 여기까지’라는 경계선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수많은 경계선을 만든다.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과는 쉽게 가까워지고,
나와 다른 사람에게는 거리를 둔다.
학연이나 지연, 사회적 지위에 따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때도 있다.

성당 안에서도 그럴 수 있다.
오랫동안 활동한 사람끼리는 친숙하지만 새로 온 교우는 쉽게 어울리지 못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에게 열린 공동체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내 옆자리는 친한 사람을 위해 남겨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먼저 이렇게 시작한다.
너희는 공정을 지키고 정의를 실천하여라.”
기도만 잘한다고 신앙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처럼 들린다.
기도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차별한다면
그 기도에는 무엇인가 부족하다.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내 마음의 문을 닫아 놓는다면
모든 민족을 위한 기도의 집’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셈이다.

생각해 보면 식탁도 그렇다.
우리 식탁에 한 사람이 더 온다고 해서 밥맛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숟가락 하나를 더 놓고 음식을 나누면 식탁은 더 따뜻해진다.
공동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 자리를 빼앗길까 걱정하기보다 한 사람을 위해
자리를 조금 내어 주면 공동체는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넓어진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공동체는
같은 사람들끼리만 편안하게 모여 있는 곳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기도하고 함께 기뻐할 수 있는 곳일 것이다.

오늘 말씀을 읽으며 내 마음속에도 하나의 의자를 놓아 본다.
그 자리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앉을 수 있는지,
아니면 나와 생각이 다르고 낯설고 때로는 불편한 사람도
앉을 수 있는지 돌아본다.
어쩌면 신앙의 크기는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는가보다
내 마음에 얼마나 많은 사람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고 있는가로 드러나는지도 모른다.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리리라.”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문을 열어 두셨다면 나도 내 마음의 문을 조금 더 넓혀야겠다.
오늘 누군가 혼자 서 있는 사람이 보인다면 먼저 말해 보고 싶다.
“여기 자리가 있습니다. 우리와 함께 앉으세요.”
그 작은 한마디에서 하느님의 집은 이미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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