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독서 말씀] 하느님께서 떠나시기 전에 (에제 9,1-7; 10,18-22)
본문
오랫동안 사람들이 살던 집도 사람이 떠나고 나면 금세 달라진다.
처음에는 가구도 그대로 있고 벽에 걸린 그림도 그대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먼지가 쌓이고 마당에는 잡초가 자란다.
집의 모습은 남아 있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던 온기는 사라진다.
집을 집답게 만드는 것은 건물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 에제키엘서의 말씀을 읽으면서 ‘떠남’이라는 말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있었고 제단도 있었으며 제사도 계속되고 있었다.
겉으로는 여전히 하느님의 집이었다.
그런데 에제키엘은 놀라운 광경을 본다.
커룹들 위에 머물던 하느님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으로 옮겨지고,
다시 커룹들 위에 머물렀다가 마침내 동쪽 대문을 향한다.
하느님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성전이 무너지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성전은 그대로 있는데 하느님께서 그곳을 떠나시는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그럴 수 있다.
주일이면 성당에 가고 기도하며 봉사도 한다.
그러나 기도하면서도 마음에 미움이 가득하고,
봉사하면서도 인정받기를 원하며,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보고도 아무런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면
신앙의 모습은 남아 있어도 그 안의 무엇인가가 비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 말씀에서 또 하나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 있다.
하느님께서는 아마포 옷을 입은 사람에게
예루살렘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이마에 표를 하라고 하신다.
그 표를 받은 사람들은 높은 지위에 있거나 재산이 많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 모든 역겨운 짓 때문에 탄식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이었다.
악을 보고도 무감각해지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이 말씀 앞에서 나 자신에게 묻게 된다.
나는 세상의 잘못과 이웃의 고통을 보면서 아직도 마음 아파하고 있는가?
처음에는 가슴 아프게 느껴졌던 일도 반복해서 접하다 보면
어느 순간 “세상이 원래 그렇지.” 하며 지나치게 된다.
어쩌면 신앙의 위험은 악을 저지르는 데서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악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느끼는 순간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식품의 변질도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작은 오염이 생기고, 온도가 조금 어긋나고,
관리가 소홀해지는 일이 반복된다.
처음에는 별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며
지나치다 보면 어느 순간 되돌리기 어려운 상태에 이른다.
우리의 양심도 그렇다.
처음에는 작은 거짓말에도 마음이 불편하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면 미안하다.
그러나 그런 마음의 신호를 계속 무시하다 보면 어느 순간 아무렇지도 않게 된다.
잘못을 저지르는 것보다 잘못하고도
마음이 아프지 않은 상태가 더 두려운 이유이다.
에제키엘이 본 이마의 표는 어쩌면
‘아직 살아 있는 양심의 표’처럼 느껴진다.
오늘 말씀에는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가혹한 심판의 장면도 등장한다.
그러나 이 말씀을 인간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읽어서는 안 될 것이다.
당시 예루살렘이 얼마나 깊은 죄악과 파괴의 길에 들어섰는지를
예언자의 강렬한 환시로 보여 주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특히 마음에 걸리는 말씀이 있다.
“내 성전에서부터 시작하여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보다 하느님을 안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먼저 책임을 물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보다 나 자신을 먼저 돌아보게 한다.
세상이 왜 이러냐고 말하기 전에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사람들이 왜 이기적이냐고 말하기 전에
나는 얼마나 이웃을 배려하고 있는가.
사회의 부정직을 비판하기 전에 나는 작은 일에서 얼마나 정직한가.
그리고 마침내 하느님의 영광은 성전 문지방을 넘어 동쪽 대문으로 향한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단번에 떠나지 않으신다.
문지방에 머무시고, 다시 커룹 위에 머무시며, 동쪽 대문에서도 멈추신다.
마치 떠나면서도 몇 번이나 뒤돌아보시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이 말씀을 심판의 이야기만으로 읽고 싶지 않다.
그 안에는 마지막까지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느님의 안타까움도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사랑은 무조건 잘했다고 말해 주는 사랑이 아니다.
잘못된 길을 걸을 때 멈추라고 말씀하시고,
그래도 돌아오지 않을 때 문 앞에서 기다리시는 사랑이다.
오늘 나는 내 마음의 성전을 돌아본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보고 아직 마음 아파할 수 있는가.
나의 작은 잘못에도 양심이 불편한가.
그렇다면 아직 희망이 있다.
마음이 아프다는 것은 내 안의 양심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이며,
하느님께서 여전히 내 마음을 두드리고 계신다는 표시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떠나시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하느님께서 떠나고 계셔도 내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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