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 순례] 연풍성지에서 만난 선조들의 신앙
본문
2년 전 비를 맞으며 연풍성지를 찾았던 기억이 있다.
우산을 쓰고 젖은 길을 걸으며 순교자들의 삶을 떠올렸던 그날과는 달리,
이번에는 맑고 화창한 하늘이 우리를 반겨 주었다.
산자락을 감싸는 푸른 녹음과 따뜻한 햇살은 마치 순례객을 맞이하는 듯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이번 순례에는 천주교 신자가 아닌 친구들도 함께했다.
신앙의 유무를 떠나 우리의 역사와 삶의 흔적을 돌아보는 일에는 모두가 기꺼이 동참하였다.
성지를 둘러보며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사람을 이렇게까지 박해할 수 있었을까?”
나 역시 같은 생각을 했다.
단지 신앙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가족이 흩어지고, 옥에 갇히고, 목숨까지 잃어야 했던 시대.
지금의 시각으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다.
잠시 머리를 숙여 순교자들의 넋을 기리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고,
우리 일행은 하나씩 촛불을 봉헌하였다.
작지만 정성 어린 그 불빛은 선조들의 믿음에 대한 존경의 표시이기도 했다.
성당 밖으로 나가 보니 곳곳에 남아 있는 흔적들이 당시 신자들의 삶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깊은 산속에 자리 잡은 연풍성지는 한눈에 보아도 숨어 지내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험준한 산세는 외부의 눈을 피할 수 있게 해 주었고,
자연은 신앙인들의 마지막 피난처가 되어 주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가까이에는 문경새재가 자리하고 있었다.
조선시대 영남과 한양을 연결하던 중요한 길목이었지만,
성지는 그 길에서 약간 비켜난 곳에 위치해 있어
사람들의 왕래는 가능하면서도 비교적 안전한 장소였을 것이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산속으로 숨어들었던 이들의 절박함과 지혜가 느껴졌다.
그러나 결국 많은 신자들은 이곳에서도 붙잡혔다.
체포된 이들 가운데 일부는 멀리 충청도의 갈매못까지 끌려가 순교의 길을 걸었다.
수백 리 길을 포승줄에 묶여 이동했을 그들의 심정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살아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신앙을 버리지 않았던
그들의 용기는 오늘날을 사는 우리에게 깊은 질문을 던진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강하게 만들었을까.
연풍성지를 거닐다 보면 자연스럽게 로마시대의 초대 교회가 떠오른다.
검투장과 감옥,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던 초기 그리스도인들처럼,
우리 선조들 역시 죽음 앞에서도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박해가 깊어질수록 신앙은 더욱 단단해졌고, 그들의 희생 위에 오늘의 한국 교회가 세워졌다.
평화로운 산길을 걸으며 친구들과 함께 그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람은 시원했고 하늘은 맑았지만,
그 평화로움 속에서 오히려 순교자들의 고통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오늘 우리가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연풍성지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그곳은 우리 신앙의 뿌리를 만나는 장소이며,
믿음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놓았던 사람들의 삶을 되새기는 공간이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화창한 하늘 아래에서의 이번 순례는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하는 시간을 넘어,
선조들의 뜨거운 신앙과 용기를 다시 배우는 소중한 여정이 되었다.
그들의 믿음은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연풍의 산과 바람 속에서 오늘도 조용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듯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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