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제 1 독서 말씀] 모세의 기도
본문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말이 있다.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거나 속게 되었을 때
인간이 느끼는 상처와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오히려 가까운 사람에게 받은 상처일수록 더 깊게 남는다.
그래서 인간은 배신을 당하면 관계를 끊고 싶어 하고,
때로는 평생 마음속에 미움과 복수심을 품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 탈출기의 말씀은 인간과는 전혀 다른 하느님의 모습을 보여주신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 큰 은혜를 받았다.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었고,
홍해를 건넜으며,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으며 살게 해 주셨다.
그럼에도 모세가 산에 올라가 있는 동안
그들은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을 신이라고 부르며 절하였다.
이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하느님에 대한 배신이었다.
인간적으로 보면 충분히 분노하고 등을 돌리실 만한 상황이었다.
인간의 배신과 죄가 드러난 바로 그 자리에서
하느님께서는 다시 모세 앞에 나타나신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어떻게 드러내시는가 하는 점이다.
“주님은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다.
분노에 더디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다.”
성경에서 하느님은 먼저 힘과 심판으로 자신을 설명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자비와 너그러움,
오래 참음과 사랑으로 당신을 드러내신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미 큰 잘못을 저질렀다.
하느님을 잊고 눈에 보이는 금송아지를 붙잡았으며,
조급함 속에서 스스로 신을 만들었다.
인간의 연약함과 불신앙이 그대로 드러난 사건이었다.
그런데도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신다.
이것이 이 장면의 가장 깊은 부분이다.
모세 역시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하느님께 간청한다.
“이 백성이 목이 뻣뻣하기는 하지만…”
이 표현 또한 참 인간적이다.
모세는 백성이 완벽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의 완고함과 부족함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 용서를 청한다.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기도한다.
“저희를 당신 소유로 삼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신앙은 완벽한 사람이 하느님께 선택받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부족하고 자주 흔들리는 인간을
하느님께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이야기이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큰 위로를 준다.
우리 역시 살아가면서 쉽게 흔들리고,
조급해하며, 눈에 보이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때로는 하느님보다 자신의 욕망을 더 붙들 때가 많다.
그런데도 하느님께서는 먼저 자비로 다가오신다.
물론 죄를 가볍게 여기신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마지막 말은 심판보다
“관계의 회복”에 더 가까워 보인다.
모세가 바란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주님께서 저희와 함께 가 주시기를 바랍니다.”
광야에서 가장 큰 축복은 편안함이나 풍요가 아니었다.
하느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사실 자체가 가장 큰 희망이었다.
이 말씀은 결국 우리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나는 하느님을 어떤 분으로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혹시 늘 벌주시는 분,
실수하면 버리시는 분,
완벽해야만 받아 주시는 분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나 오늘 탈출기의 하느님은 다르게 자신을 드러내신다.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
신앙은 두려움만으로 유지되는 관계가 아니다.
자비를 체험한 사람이 다시 하느님께 돌아오는 관계이다.
그리고 모세의 기도처럼,
우리 역시 완벽해서 하느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 아니라,
부족함 속에서도 다시 하느님께 함께 걸어가 달라고 청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진짜 신앙은
“나는 잘하고 있습니다.”라는 고백보다,
“주님, 저희와 함께 가 주십시오.”
라고 말할 수 있는 겸손한 마음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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