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독서 말씀] 숨은 인간을 끝까지 찾으시는 하느님
본문
창세기 3장의 이야기는 인간이 처음으로 하느님 앞에서 숨게 된 순간을 보여 준다.
아담과 하와는 금지된 열매를 먹은 뒤 자신들의 벌거벗음을 깨닫고 두려움 속에 동산 나무 사이로 몸을 숨긴다. 그들을 향해 들려오는 하느님의 첫 말씀은 의외로 꾸짖음이 아니다.
“너 어디 있느냐?”
하느님께서 아담의 위치를 몰라서 물으신 것은 아니다.
이 질문은 인간의 몸이 아니라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다. 관계가 멀어진 자리, 두려움이 마음을 지배하기 시작한 자리, 사랑보다 숨고 싶은 마음이 커진 그 지점을 향해 하느님은 먼저 다가오신다.
아담과 하와의 대답은 변명으로 이어진다.
아담은 “여자가 주어서 먹었습니다.”라고 말하고, 하와는 “뱀이 저를 꾀었습니다.”라고 말한다. 죄를 지은 뒤 인간 안에 가장 먼저 자리 잡은 것은 책임 회피와 두려움이었다. 자기 안을 바라보기보다 원인을 밖으로 돌리며 스스로를 숨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단순히 잘못을 추궁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인간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상처와 두려움을 바라보신다. 죄의 본질은 단지 열매를 먹은 행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가 끊어졌다고 느끼며 숨어버린 인간의 마음에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심판의 한가운데에서도 희망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여자의 후손이 너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악은 인간에게 상처를 입힐 수는 있지만, 끝내 인간을 무너뜨릴 수는 없다는 약속이다. 성경은 인간의 타락 이야기 속에서도 이미 구원의 씨앗을 심어 놓고 있다.
이어지는 장면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아담은 아내를 “하와”, 곧 “모든 산 이의 어머니”라고 부른다. 죄와 실패의 이야기 한가운데서 성경은 다시 생명을 이야기한다.
이것이 하느님의 방식이다.
인간은 실패 속에서 끝을 보지만, 하느님은 바로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을 준비하신다.
자연 안에서도 우리는 비슷한 모습을 자주 본다.
한 알의 밀알은 땅에 묻혀 썩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 새로운 생명이 움튼다. 겨울을 견딘 나무는 다시 싹을 틔우고, 메마른 땅에서도 봄은 다시 찾아온다.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하느님께서는 완벽한 사람만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상처 입고 흔들리는 인간을 다시 일으켜 세우신다. 죄의 자리에서도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숨은 인간을 끝까지 찾아오신다.
그래서 “너 어디 있느냐?”라는 질문은 단순한 책망이 아니다.
그것은 길을 잃은 인간을 다시 관계 안으로 초대하는 사랑의 부르심이다.
오늘도 우리는 두려움 때문에 숨고 싶어질 때가 많다.
상처받았을 때
실패했을 때
부끄러운 마음이 들 때
그러나 하느님은 여전히 우리를 찾으신다.
“너 어디 있느냐?”
그 부르심 앞에서 다시 걸어 나오는 순간, 신앙은 다시 시작된다.
어쩌면 구원은 완벽함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숨지 않고 하느님 앞에 다시 서려는 마음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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