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독서 말씀] 믿음이란?
본문
사도행전 19장의 이 장면은 “믿음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말씀이다.
에페소에 도착한 바오로는 제자 몇 사람을 만나 가장 먼저 묻는다.
“여러분이 믿게 되었을 때 성령을 받았습니까?”
이 질문은 매우 놀랍다.
보통 사람은 “무엇을 알고 있는가?”를 먼저 묻지만,
바오로는 “성령을 받았는가?”를 묻는다.
신앙은 단순한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성령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명의 문제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들의 대답은 뜻밖이다.
“성령이 있다는 말조차 듣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미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아직 완전한 복음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상태였다.
요한의 세례는 회개를 준비시키는 세례였지만,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생명까지는 아직 이르지 못했던 것이다.
이 장면은 신앙의 중요한 특징 하나를 보여준다.
신앙은 단순히 과거를 반성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참된 신앙은 성령 안에서 새로운 존재로 변화되는 데까지 나아간다.
그래서 바오로는 그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안수하자 성령께서 그들에게 내리신다.
그들은 신령한 언어로 말하고 예언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신비 체험 자체가 아니다.
닫혀 있던 사람들이 성령 안에서 새롭게 열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성령은 인간 안에 잠들어 있던 가능성과 생명성을 깨우는 힘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바오로는 석 달 동안 회당에서 토론하고, 설득하며, 담대히 설교한다.
신앙은 단순한 감정만이 아니라,
끊임없는 대화와 성찰 속에서 자라난다는 것을 보여준다.
에페소의 제자들도 비슷했다.
그들은 이미 “요한의 세례”라는 준비 상태는 가지고 있었지만,
아직 성령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한 상태였다.
바오로는 그 안에 잠들어 있던 생명성을 깨우는 역할을 한 셈이다.
또 흥미로운 점은 성령을 받은 뒤 그들에게 나타난 변화이다.
말하기 시작하고, 예언하며, 표현이 열리기 시작한다.
신앙도 그렇다.
참된 변화는 단순히 머릿속에 머무르지 않고,
삶과 언어와 태도 속에서 드러나기 시작한다.
사람은 때때로 신앙을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 바오로의 질문은 우리에게도 다시 들려온다.
“당신은 정말 성령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신앙은 단순히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성령 안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깨어나는 일이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 안에도 아직 깨어나지 않은 부분이 남아 있는지 모른다.
하느님께서는 오늘도 그 깊은 곳에 숨겨진 생명을 깨우시며,
우리에게 다시 묻고 계시는지도 모른다.
“너는 지금 살아 움직이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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