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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독서 말씀] 농부의 철학을 아는 다윗

제임스
15시간 22분전 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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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사무엘 상 24장 3-21절)은 마치 동굴이 단순한 은신처가 아니라
때를 기다리는 밭처럼 보인다.
농부는 씨를 뿌릴 때마다 알고 있다.
지금 뿌린 씨가 곧바로 열매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흙을 덮고, 물을 주고, 잡초를 뽑으며
기다리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사울을 죽일 수 있었던 그 순간은,
마치 잘 여문 열매를 남의 밭에서 먼저 따 갈 수 있는 기회와도 같다.
힘들게 농사짓는 사람 눈에는 그 유혹이 얼마나 큰지 안다.
제 때가 아닌 수확은 씨앗을 죽인다는 것도.
다윗이 자른 것은 사울의 목숨이 아니라 겉옷 자락이었다.
이는 뿌리째 뽑지 않고 가지를 건드린 것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다윗의 마음은 찔렸다.
농부가 괜히 아직 자라지 않은 어린 싹을 밟았을 때 느끼는 그 마음과 닮았다.
“이건 내가 할 일이 아니었구나.”
농부는 밭에서 서열을 존중한다.
먼저 심은 나무가 있고, 먼저 자리를 잡은 작물이 있다.
새로 들어온 씨앗이 아무리 튼실해 보여도,
그 질서를 무너뜨리면 밭 전체가 망가지고 만다.

다윗이 말한 “기름부음 받은 이”라는 표현은
“아직 그분의 밭이다. 아직 그분의 계절이다.”라고 생각한 듯.
또 하나, 농부는 억울함을 땅에 맡길 줄 아는 사람이다.

가뭄이 들고, 서리가 내려도 매번 하늘을 원망만 하지는 않는다.
자기 손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은 하늘과 때의 몫으로 남겨 둔다.
다윗이 “제 손으로는 임금님을 해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한 대목은
농부가 말하는 신앙의 태도와 같다.
“이건 내가 할 일이 아니다.”
사울이 울며 고백하는 장면은
농부가 수확철에야 깨닫는 진실과 닮아 있다.
누가 밭을 살렸는지,
누가 밭을 망치지 않았는지는
마지막에 가서야 분명해진다.
농부의 눈에 다윗은
성급히 김을 매지 않는 사람,
남의 밭을 망치지 않는 사람,
자기 차례가 올 때까지
호미를 내려놓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다.
권력의 이야기이기 전에 농사의 이야기로 생각해 보았다.
하느님의 일은, 언제나 사람의 손보다
한 계절 늦게 완성된다는 것을
밭에서 배운 사람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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