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경 말씀] 잘린 그루터기에서 돋아나는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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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이사야 11장과 루카 10장의 만남-
갑작스러운 전화 한 통에 정신이 흐트러져 보이스피싱을 당한 사람이라면,
순간적으로 밀려오는 공황과 좌절을 잊기 어렵다.
“아이쿠, 이제 어쩌나!” 하는 외마디 속에는
스스로에 대한 실망과 삶 전체가 무너지는 듯한 체념이 함께 담겨 있다.
부도의 위기를 앞둔 사람도 마찬가지다.
하루하루가 벼랑 끝인데, 예기치 않은 또 다른 악재가 겹쳐 오면
‘이제는 정말 끝이구나’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이런 절망의 순간들은 불쑥 찾아온다.
열심히 쌓아온 일이 갑자기 멈출 때,
오랫동안 유지되던 인간관계가 조금씩 마모될 때,
내 안의 힘이 바닥을 드러낼 때
우리는 잘려 나간 나무의 그루터기처럼
아무것도 다시 자라지 않을 것 같은 마음이 된다.
그런데 성경은 참 흥미롭게도
바로 그 끝난 자리에서 희망을 이야기한다.
잘린 자리, 버려진 자리, 생명이 더 이상 없을 것 같은 자리.
이사야는 오히려 그곳이 새 이야기가 시작되는 자리라고 말한다.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리라.”
절망과 같던 자리에 “돋아난다”는 동사가 등장하는 것은 놀라운 전환이다.
삶에서도 그런 순간이 있다.
저 역시 연구에 지치거나 강연 준비에 눌려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을 것 같은 공백 앞에서 하염없이 머뭇거리곤 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바로 그 공백의 끝에서
가늘지만 분명한 ‘새 방향’이 얼굴을 내밀 때가 많았다.
마치 땅속에서 오래 준비된 새싹이
때가 되면 조용히 흙을 비집고 올라오는 것처럼.
이사야가 말하는 그 새싹 위에는
지혜, 슬기, 용맹, 경외의 영이 머문다.
힘으로 밀어붙이는 강한 자의 힘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앎에서 비롯된 부드럽고 단단한 힘이다.
그 힘은 겉모습이나 소문에 흔들리지 않고
힘없는 이들을 향해 조용히 정의를 실천하는 방향으로 흐른다.
예언자는 이어 세상이 뒤집히는 듯한 풍경을 펼쳐 놓는다.
늑대가 어린 양과 함께 누워 쉬고,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
아이가 독사 굴 위에 손을 내밀어도 해를 입지 않는 나라.
우리가 아는 세계의 원리론 설명할 수 없는 장면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사야가 꿈꾸는 이상향이 아니라
하느님의 지혜가 깊숙이 스며든 세상,
모순이 대립이 아니라 공존으로 변하는 세상을 상징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평화의 본질이다.
루카 복음에서 예수님은 성령 안에서 기뻐하시며 선언하신다.
지혜롭다 자부하는 이들에게 감추어진 것을
순수한 마음들에게 드러내 보이신 아버지께 찬미를 드리며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고 말씀하신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보고자 했으나 보지 못했고,
듣고자 했으나 듣지 못한 것을
지금 제자들이 보고 듣고 있다는 뜻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가 ‘이미 가진 것’의 소중함을 다시 일깨운다.
신앙도, 삶의 통찰도, 평화의 가능성도
먼 미래에 갑자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음을 알게 한다.
돌아보면, 나의 삶에서도
‘햇순 같은 순간’은 종종 매우 작은 곳에서 돋아났다.
강연 중 학생이 건넨 짧은 질문 한 줄,
연구실 한구석에서 생겨난 우연한 영감,
일상의 고단함 속에서 누군가가 슬그머니 건네준 미소.
그 작은 움직임들이 모여
새로운 방향을 열어주고
내 마음의 굳은 땅을 보드랍게 갈아엎었다.
우리는 거대한 변화만을 꿈꾸지만
하느님은 오히려 조용한 자리, 잘린 자리, 낮은 자리에서
새싹을 돋게 하신다.
그 새싹을 알아보는 눈—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행복의 눈’이며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필요한 영적 감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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