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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경말씀]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제임스
2025-11-27 09:41 1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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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 루카 21,20-28)에 대한 묵상수필입니다.

 

인간의 한계에 부딪히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 순간은 예고 없이 찾아오기도 하고, 조금씩 예열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삶의 중심을 뒤흔들기도 한다. 그렇기에 절망은 더 깊고, 숨은 더 막힌다.

한 신학생도 그러한 밤을 맞이한 적이 있었다. 신학교의 하루는 겉보기에는 고요하고 질서 정연했다.
규칙적인 기도, 묵상, 수업, 성무일도
그러나 고요함 아래 숨겨진 내면은 흔들리고 있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피로, 자신이 잘 가고 있는지 모르는 불안, 기도를 해도 닿지 않는 것 같은 메마름이 그의 마음에 조금씩 금을 냈다.

어느 날 저녁, 그는 더는 버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적막이 오히려 그를 더 고독하게 밀어 넣었다.

잠시만이라도 이 괴로움을 잊을 수 있다면

그는 외출해 술을 사 왔다. 돌아오는 길, 겨울밤의 차가운 공기가 뺨을 스쳤지만 그 냉기가 오히려 위로처럼 느껴졌다. 방에 들어와 책상 서랍 깊숙이 감춰두었던 잔을 꺼냈다.
한 모금, 또 한 모금알코올이 목을 지나며 따뜻하게 퍼져 갔지만 마음 한구석의 냉기는 조금도 녹지 않았다. 술은 괴로움을 잊게 해 주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왜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을까!’
스스로를 탓하며 더 깊은 구덩이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가 고개를 떨군 채 잔을 내려놓았을 때, 문이 조용히 열렸다. 그 순간 그는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문간에 서 계신 분은 다른 누구도 아닌 총장 신부님이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손에 쥔 잔을 놓으려 했지만 이미 모든 것이 들켜 버렸다.
그 짧은 순간에 그는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가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이제 쫓겨 나리라는 생각이 피부 속으로 파고드는 듯했다.
방 안에는 긴 침묵이 흘렀다. 총장신부님의 시선은 그를 꾸짖지도, 정죄하지도 않았다. 그저 깊고 조용하게 머물렀다. 마치 술의 냄새와 죄의 흔적을 넘어 그의 지친 영혼을 들여다보는 시선 같았다. 한참을 그러고 계시던 총장신부님은 조용히 말씀하셨다.

자네, 일주일 동안수업도 하지 말고, 먹지도 말고, 아무것도 하지 말고 성체조배만 하게.
그리고 일주일 뒤에 나를 찾아오게.” 그 말은 벌이었지만 동시에 은총이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만 끄덕였다.
 

일주일 동안 그는 식음을 전폐하고 성체 앞에 머물렀다.
성체조배실의 적막 속에 홀로 무릎 꿇어 앉아 있으면 알코올의 열기와 죄책감이 뒤섞여 미묘한 중후한 냄새처럼 마음을 압박했다. 하루 이틀은 그냥 버티는 느낌이었지만 삼일째가 되자 그는 더는 견디기 어려웠다.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침묵의 무게, 예수님 앞에 그대로 드러나는 자신의 상처와 한계들
마치 예루살렘이 적군에게 포위되었을 때 백성들이 느낀 공포가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서, 아주 조용한 속삭임 하나가 그의 마음 깊은 곳으로 스며들었다.

괜찮다. 여기 있다.” 그 말이 들린 것처럼 느껴졌다. 설명할 수도 없지만 그 순간 그는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떨리는 손으로 총장신부님 방을 두드렸다.

예수님은무엇이라고 말씀하시던가?”
총장신부님의 물음은 우주에서 날아온 화살처럼 그의 중심을 명중시켰다.

그는 허리를 펴 보려고 애쓰며 눈물에 젖은, 가느다란 목소리로 힘없이 대답했다.

예수님은한 번만 용서해주세요라고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내뱉는 말은 준비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총장신부님의 표정이 부드럽게 풀렸다
. 그를 더 꾸짖을 엄두조차 내지 못한 듯했다.
그분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 주었다.
그 신학생은 이후 사제가 되었고, 지금도 성실하게 사목을 이어가고 있다.
그에게 찾아온 절망의 순간은 예루살렘이 포위되는 순간과 닮아 있었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자리에서 그는 하느님의 손길을 경험했다.

예루살렘이 적군에게 둘러싸일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제자들의 마음도 얼어붙었을 것이다. 성전의 금빛 기둥 아래 서 있으면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지만 예수님의 예언은 그 성전마저 허물어질 날이 오리라 말씀하셨다. 그분의 말은 인간이 의지하던 모든 안정과 익숙함을 흔들어 놓는 말씀이었지만 동시에 깊은 어둠 속에서도 길을 밝혀주는 등불 같은 말씀이었다. 예루살렘이 무너지는 날은 단지 도시의 파괴를 뜻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붙잡고 있던 확신이 무너지고, 믿어 의지하던 모든 것이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젖먹이를 안고 도망쳐야 하는 여인들,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시골 사람들
모두가 그토록 피하고 싶던 한계의 자리에 서야 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시련은 단지 징벌의 날이 아니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버리는 분노가 아니라, 무너져야 할 것이 무너지고 드러나야 할 것이 드러나는 정화의 시간이었다. 구약의 예언자들이 그러했듯, 하느님은 때때로 혼란 속에서 새로운 길을 여신다. 무너지는 자리에서 길을 내시고, 어둠 속에서 빛을 드러내신다. 해와 달과 별이 흔들리고 바다와 파도가 세상을 향해 울부짖듯 밀려올 때, 사람들은 앞날을 예감하며 두려움에 떨 것이다.
 

오늘 우리의 시대에도 다르지 않다. 전쟁의 소식, 자연재해, 인간의 탐욕이 만든 비극들이
매일같이 마음을 짓누른다. 그러나 예수님은 바로 그 순간에 전혀 다른 자세를 요구하신다.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두려움 때문에 허리가 굽고 앞이 보이지 않아 고개를 숙일 때, 예수님은 우리에게 거꾸로 몸을 세우라고 하신다. 고통이 시작되는 순간은 사실 속량이 가까워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들이 구름을 타고 오는 모습은 세상을 무섭게 심판하려는 장면이 아니라, 오랜 세월 고통 속에서 버티던 이들을 마침내 품어 안으시는 회복의 장면이다.
그분께서 오시는 때는 세상이 무너지는 때가 아니라, 무너진 마음이 다시 일어나는 때이다.

예루살렘이 포위되는 현실 속에서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도망칠 길을 알려주셨고, 혼란 속에서도 하늘의 표징을 읽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무엇보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중심이 어디인지 다시 일깨워 주셨다.

세상이 흔들릴 때도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우리가 이미 하느님의 손 안에 있다는 증거다. 인간의 힘으로 설 수 없을 때 그분의 약속이 우리를 일으켜 세운다.


오늘도 우리의 예루살렘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를 포위한다

경제적 어려움, 가족의 아픔, 노년의 외로움, 예기치 못한 병, 인간관계의 상처들그 모든 것이 우리를 짓누르고 고개 숙이게 만들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여전히 조용히 속삭인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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