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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경 말씀] 빛의 나라에 스며드는 순간

제임스
2025-11-23 07:37 1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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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전 처형장과 묘지가 있던 골고타 언덕의 
성묘 교회 안에 있는 십자가 예수 상. 이곳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고 전해온다. [사진출처:중앙포토] 



오늘의 성경말씀(콜로새서 1장,  루까 23장)에 대한 묵상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 무렵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나는 참으로 열심히 성당에 다녔다.
미사 전 성가 연습, 레지오 활동, 봉사활동, 형제 자매들과의 웃음까지,
성당은 내 어린 시절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사춘기라는 낯선 계절이 문득 찾아오자
그 발걸음은 어느 순간 갑자기 멈춰 버렸다.
아마 누구에게나 한 번쯤 찾아오는 냉담의 어둠이
그때 내게도 조용히 내려앉았던 것 같다.

저녁 안개가 들판을 순식간에 덮어 버리듯,
영혼 한쪽 모퉁이에 내려앉은 침묵의 그림자는
오랫동안 떠날 기미가 없었다.

3년쯤 지난 어느 날, 우연히 보게 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속에서
교회의 종소리가 세차게 울려 퍼지는 순간이 있었다.
그 울림이 어찌나 깊고 맑던지,
설명할 수 없는 빛 한 줄기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뒤돌아보면 아무도 없는데,
분명 누군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처럼 들렸다.
그 빛의 손길은 오래전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바오로 사도는 이 신비로운 부름을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해 내시어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

돌고 돌아 멀리 떠난 것 같아도
우리가 결국 닿게 되는 자리는 어둠이 아니라 빛이라는 선언.
내가 애써 얻어낸 영광이 아니라
이미 내게 주어진 상속의 몫이라는 고백.
그 한마디가 마음속에 굳게 세워졌던 벽을 조금씩 허물어
내 안으로 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 빛의 한가운데에는 그리스도가 계신다.
바오로는 그분을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이라 부른다.
마치 새벽빛이 밤의 경계를 허물 듯,
그분 안에서 만물이 태어나고
그분을 향해 숨 쉬며 그분 안에 기대어 존재한다.

가만히 세상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제각기 흩어지는 듯 보일 때가 많다.

사람들은 각자의 사정으로 흔들리고,
예기치 않은 사건들은 마음을 뒤흔든다.
억눌린 감정은 흘러갈 곳을 찾지 못해 헤매기 일쑤다.
그러나 바오로는 말한다.
그분 안에서 만물은 존속합니다.”

우리는 종종 잊고 살지만,
세상은 결코 외로운 조각들의 모음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결의 실선이 모든 존재를 이어 주고,
심지어 나의 불안까지도 어디론가 연결시킨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마음에는 알 수 없는 평화가 찾아온다.

그리고 바오로는 가장 깊은 비밀을 전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머리이실 뿐 아니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맏이이시라는 것.
, 우리가 삶의 끝이라고 여겼던 그곳에서
이미 새로운 시작이 조용히 피어나고 있었다는 뜻이다.


삶을 살다 보면 막다른 골목에 선 듯한 순간이 찾아온다.
더는 나아갈 길이 없다고 느껴지는 자리.
그러나 부활을 사는 사람에게 그 자리는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점이 된다.
그리스도는 그 시작의 첫 열매로서
우리의 손을 잡고 다시 걸음을 내딛게 하신다.
 

그러나 이 모든 은총의 중심에는 한 가지 붉은빛이 있다.
바로 십자가의 피.

찬란한 빛은 그 붉은 흔적을 통과하며,
세계는 그 피를 통해 화해의 길을 배운다.
하늘의 것도, 땅의 것도, 멀리 떠난 사람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안에서 여전히 흔들리는 그림자들까지도.

하느님은 억지로가 아니라
기꺼이우리를 다시 잇기 위해 그 피를 허락하셨다.
화해란 바로 그런 것이다.
강요된 용서가 아니라 기꺼운 사랑.
닫혀 있던 두 마음이
다시 마주 볼 수 있도록 하는 은총의 개입.


그리고 나는 오늘,
내 안에서 아주 희미하게나마 빛이 스며들고 있음을 느낀다.
아직 완전하지 않아도 괜찮다.
빛은 때로 아주 서서히,
어둠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조심스레 스며들기도 한다.
그 은은한 변화조차 이미 은총의 첫 걸음이다.

지금 우리는 모두 빛의 나라의 문턱에 서 있다.
아직 빛에 눈이 완전히 익지 않아
가늘게 눈을 뜨고 있을 뿐,
우리는 이미 그 나라로 옮겨진 존재들이다.
그리고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이유가 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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