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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계시는 주님, 그리고 나를 보내시는 주님

제임스
10시간 9분전 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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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경 말씀(2티모 4,17 / 루카 10,3.5.9)에 대한  묵상 수필입니다

 

어머님께서 세상을 떠나시기 두 달 전, 나는 사흘 동안 병실에서 함께 지낸 적이 있었다.

그 방에는 내 또래의 할머니들이 여럿 계셨는데, 혼자 힘으로는 화장실에 가기도 어려운 분들이었다. 가족들은 밤낮없이 곁을 지키며 대소변을 받아내고, 조심스레 등을 쓸어드리곤 했다.

그 속에서 들려온 어머님의 한마디가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다.

애야, 네가 곁에 있어서 나는 너무 좋다. 고맙다.”

나는 그저 곁에 앉아 물 한 컵을 건네고 손을 잡아드린 것뿐이었다.

하지만 어머님께 그 시간은 위로였고, 나에게는 곁에 있음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 순간이었다.

누군가 곁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음은 평안해지고, 두려움은 잦아들며,

삶의 의지가 다시 피어난다.

오늘의 성경 말씀도 바로 그 마음을 닮았다.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 (2티모 4,17)

이 한 구절이 오랫동안 내 마음에 머물렀다.

바오로 사도가 이 말을 남길 때는 이미 인생의 황혼에 접어든 시기였다.

감옥에 갇혀 있었고, 동료들마저 떠나갔다.

그러나 그는 외로움이나 원망 대신 이렇게 고백했다.

주님께서 내 곁에 계신다.”

그의 믿음은 상황을 초월한 신앙의 확신이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실패요, 절망의 자리였지만

그는 그 속에서도 주님의 손길을 느꼈다.

주님은 멀리서 바라보는 분이 아니라,

고난의 한가운데 함께 서 계시는 분이시다.

우리의 삶에도 그런 순간이 있다.

건강이 흔들리고, 가까운 이가 떠나며, 마음의 의지처가 사라질 때

우리는 문득 이제 나 혼자인가?’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그 어둠 속에서 오히려 주님의 손길이 가장 가깝게 다가온다.

주님은 우리가 행복할 때보다, 눈물짓고 괴로울 때 더 가까이 계신다.

우리가 쓰러질까 봐, 다시 일어서지 못할까 봐,

조용히 우리 곁에 머무르신다.

바오로의 고백은 바로 그런 체험의 고백이다.

그런데 주님은 곁에 머무르기만 하시지 않는다.

루카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가거라. 나는 너희를 보낸다.” (루카 10,3)

평화를 빕니다.” (10,5)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10,9)

주님은 우리가 그분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것에 머물지 않게 하신다.

그분은 우리를 세상으로, 이웃에게로 보내신다.

보내심을 받는다는 것은 곧 누군가를 위한 존재가 되는 일이다.

주님은 우리가 교회의 벽 안에만 머물기를 바라지 않으신다.

우리가 살아가는 그 자리, 가족과 일터, 마을의 골목 한쪽에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사실을 몸소 드러내는 증인이 되기를 바라신다.

그러나 세상으로 나아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현실의 냉담함, 불의, 무관심이 우리를 주저앉히곤 한다.

때로는 평화를 빕니다라는 인사조차 공허하게 들릴 때가 있다.

하지만 주님은 여전히 우리를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시듯파견하신다.

그분이 함께하신다는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하셨다.”

이 확신이 있을 때만 우리는 두려움 없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나는 이 두 말씀을 묵상하며 생각했다.

곁에 계심보내심은 신앙의 두 날개다.

주님은 먼저 우리를 품어 안으시고,

그다음 우리를 세상으로 파견하신다.

머물러 있는 사랑이 아니라, 움직이는 사랑으로 신앙은 완성된다.

기도의 시간은 우리를 주님 곁으로 이끌지만,

그 기도에서 받은 힘은 결국 누군가에게 건네질

평화의 손짓으로 이어져야 한다.

며칠 전 버스 정류장에서 한 광경을 보았다.

무거운 짐을 들고 힘겹게 서 있는 노인 곁으로

한 학생이 다가가 조용히 짐을 들어드렸다.

평범하기만 한 그 장면이 마치 복음의 한 구절처럼 느껴졌다.

눈부신 기적도 아니었지만, 그저 곁에 있는 사람을 향한 작은 손길 하나,

그것이 세상을 밝히는 빛이었다.

, 이것이야말로 보내심을 받은 이의 삶이구나 싶었다.

신앙은 머리로 아는 교리가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는 여정이다.

고난 중에도 주님이 내 곁에 계신다고 믿는 사람,

그 믿음을 힘 삼아 세상에 나가 평화를 전하는 사람

이 둘은 결코 따로 있지 않다.

오늘도 나는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긴다.

주님은 내 곁에 계시며 나를 굳세게 하시고,

또한 나를 세상으로 보내어 평화를 전하게 하신다.

그분의 사랑이 내 안에 머물고, 내 삶을 통해 흘러나가

누군가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는 그날,

비로소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라는 말씀이

내 일상의 한가운데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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