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본문
오늘의 성경 말씀 (로마 4,3 / 루카 12,7)에 대한 묵상 수필입니다
인간의 사회는 결국 신뢰 위에 세워진다. 서로를 믿고 살아가는 세상, 그것이 모든 이가 바라는 사회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종종 그 반대의 방향으로 흐른다. 세상은 사람들에게 믿음을 가르치기보다, 속지 않는 법을 먼저 가르친다.
중국 사람들은 “남을 속이지 말라”기보다 “속지 말라”고 배운다고 한다. 장사를 하면서 남을 속이는 일이 드물지 않다 보니, 정직보다는 ‘눈치’와 ‘경계심’이 생존의 덕목이 된다. 학교에서도 “속지 말라”는 교훈이 반복되고, 심지어 가짜식품을 만들어 파는 이보다 그것에 속는 사람을 더 어리석다고 여긴다.
믿음보다는 의심이, 신뢰보다는 계산이 앞서는 세상. 그곳에서 ‘믿는다’는 말은 어쩌면 순진하거나 위험한 말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믿음 없는 사회는 결국 서로서로 감시하며 살아야 하는 피곤한 세상이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은 그 ‘믿음’이 무엇인지를 새삼 일깨워 준다.
“아브라함이 하느님을 믿으니, 하느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다.”(로마 4,3)
아브라함은 노년에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났다. 하느님이 보여 주시겠다고 하신 땅을 향해 나아갔으나, 그 길은 안개 속처럼 불확실했다. 그러나 그는 묻지 않았다. “언제,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합니까?” 대신 그는 그저 걸었다. 하느님의 말씀 하나만을 붙잡고.
믿음이란, 결국 계산을 내려놓는 용기이다. 보이지 않는 손을 붙잡고 걷는 담대함이며, 불확실한 길 위에서도 ‘하느님께서 함께하신다’는 내적 확신으로 나아가는 태도이다.
우리의 삶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하루하루의 현실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때로는 예기치 못한 병, 실패, 관계의 균열이 우리의 마음을 흔든다. 그럴 때 우리는 묻는다. “정말 하느님이 나를 알고 계실까? 내 기도를 듣고 계실까?”
그때 들려오는 말씀이 있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두려워하지 마라.”(루카 12,7)
이 한 구절은 믿음의 본질을 다시 세운다.
머리카락 하나하나까지 세고 계신다는 말씀은, 하느님이 우리 존재의 가장 사소한 부분까지 알고 계심을 뜻한다. 나의 숨결 하나, 눈물 한 방울까지도 기억하시는 분 — 바로 그분이 우리가 믿는 하느님이시다.
삶의 불안은 대부분 ‘모르기 때문에’ 생겨난다. 내일을 알 수 없고,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기에 두렵다. 그러나 믿음은 ‘몰라도 괜찮다’는 평화를 선사한다. 내가 알지 못하더라도, 하느님께서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이 깨달음은 일상에서도 스며든다.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실험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가족의 건강을 염려할 때마다 마음 한쪽에서 들려오는 음성 — “두려워하지 마라.”
그 음성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하느님의 섬세한 돌봄의 선언이다. 그분의 시선은 멀리서 관찰하는 차가운 눈길이 아니라, 사랑으로 헤아리는 다정한 손길이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결국 “하느님이 나를 기억하신다”는 확신에서 비롯되었다.
루카 복음은 그 확신의 근거를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머리카락까지 세시며, 작은 인생 하나를 잊지 않으시는 하느님. 그러므로 믿음이란 거대한 신비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세밀한 사랑을 신뢰하는 것이다.
나는 이제 기도할 때마다 이렇게 고백하고 싶다.
“주님, 제 믿음이 작고 흔들릴지라도, 당신의 눈길이 결코 저를 떠나지 않으심을 믿습니다. 제 머리카락까지 헤아리시는 그 손길에 오늘의 하루를 온전히 맡깁니다.”
믿음의 길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그 길 위에 서 있을 때, 우리는 두려움 속에서도 평화를,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발견한다.
아브라함이 걸었던 그 길을, 나 또한 오늘의 발걸음으로 이어간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그 손을 붙잡고,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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