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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지 않는 기준, 살아 있는 믿음

제임스
2025-10-16 11:42 1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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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지 않는 기준, 살아 있는 믿음

오늘의 복음 말씀(로마 3,28 / 루카 11,48)에 대한 묵상 수필입니다
 

    1960년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고혈압의 기준은 160이었다. 그러던 것이 150, 140으로 내려오더니 이제는 135가 기준이 되었다. 수치는 점점 낮아지고, 그에 따라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도 함께 이동했다. 건강을 지키기 위한 과학의 갱신이라지만, 때로는 이런 변화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어제까지는 괜찮던 몸이 오늘은 병의 문턱에 선 듯 불안해지는 까닭이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변하지 않는 기준 하나를 붙잡고 싶어한다. 신앙에서도 마찬가지다. 시대와 환경은 바뀌어도, 하느님을 향한 믿음의 중심만큼은 변하지 않아야 한다.

   가을 바람이 선선해지고 창밖의 잎이 하나둘 떨어진다. 잎의 낙하가 죽음이 아니라 다음 봄을 위한 준비이듯, 믿음도 겉껍질을 벗겨 내야 새 생명이 움튼다. 오래된 형식과 습관이 신앙 그 자체인 양 자리 잡을 때, 우리는 생명의 움직임을 잃어버리곤 한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이 그 지점을 꿰뚫는다.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우리는 확신합니다.”(로마 3,28)

율법은 규칙과 형식으로 질서를 세우는 울타리다. 그러나 그것이 곧 하느님과의 관계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바오로가 강조하는 것은 ‘율법의 행위’를 넘어서는 ‘믿음의 은총’이다. 인간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과 용서가 우리를 새롭게 한다는 고백이다. 그러니 믿음은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은총에 응답하여 방향을 돌리는 마음의 결단이다.

예수님은 또 다른 면을 드러내 보이신다.
“너희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이고, 너희는 그들의 무덤을 만들고 있으니, 조상들이 저지른 소행을 너희가 증언하고 또 동조하는 것이다.”(루카 11,48)

예언자들은 늘 하느님의 뜻을 불편하게 전했다. 사람들은 그 목소리를 거부했고, 시간이 흐른 뒤에야 무덤 위에 화려한 비석을 세우며 존경을 가장했다. 살아 있는 예언의 소리를 묻어버린 뒤에야, 안전한 경건으로 그 빈자리를 장식한 셈이다.
 

    우리의 신앙도 그러하지 않은가. 성당에 나가고, 기도문을 외우며, 봉사도 한다. 그러나 누군가의 고통 앞에서 외면하거나 불의한 현실 앞에서 침묵할 때, 우리는 예언자의 무덤을 조용히 쌓아 올리는 사람과 다르지 않다. 살아 있는 하느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지 않고, 그분의 뜻을 일상에서 실천하지 못할 때, 믿음은 생명을 잃은 껍데기가 된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말은 도덕적으로 흠이 없는 삶을 요구하는 구호가 아니다.
‘의롭게 된다’는 것은 법정에서 무죄를 선고받는 것과 다르다. 그것은 하느님과의 관계가 회복된다는 뜻이다. 우리가 착한 일을 많이 해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자비와 사랑이 우리를 용서하시고 품어 주심으로써 비로소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은 내 공로를 내세우는 일이 아니다. 내가 쌓은 경력, 봉사, 헌금, 기도의 횟수를 계산하며 “저는 충분히 잘했습니다”라고 말하는 대신에, 이렇게 고백하는 태도이다. “주님, 저는 여전히 부족하지만 당신을 신뢰합니다.”

이 고백은 겸손과 전적인 신뢰의 선언이다. 하느님께서 나를 일으키시고, 그분의 사랑이 나를 새롭게 하신다는 믿음. 그 믿음이 의로움의 출발점이며, 우리 영혼의 가장 단단한 중심이다.


그러나 그 중심은 멈춤이 아니라 움직임을 요구한다. 예언자의 무덤을 짓지 말라는 말씀은 오늘도 하느님이 보내시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라는 초대다. 그 음성은 강론 속에만 있지 않다. 가난한 이의 탄식, 외로운 진실의 외침, 마음을 가볍게 찌르는 양심의 속삭임에도 숨어 있다. 그때마다 우리는 내 안의 고집과 두려움, 형식과 관성을 허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결국 죽은 신앙의 무덤을 돌보는 수위로 남고 만다.

믿음은 움직임이다. 하느님을 향해 한 걸음 내딛는 용기, 익숙한 나 자신을 넘어서는 모험이다. 그 길에서만 믿음은 살아 숨 쉬며 사랑과 정의, 용서로 열매 맺는다. 과학의 수치는 바뀌고 건강의 기준은 조정될 수 있다. 이것은 더 나은 보호를 위한 인간의 배움의 과정이다. 그러나 그 모든 변동 속에서도 변치 않아야 할 삶의 기준은 하나, 하느님을 믿고 사랑하는 마음이다. 그것이 변하지 않는 중심이다.


나는 오늘 다시 묻는다.

“나는 과연 믿음으로 의롭게 살고 있는가?”
그리고 조용히 다짐한다.
살아 있는 믿음은 무덤을 짓지 않는다.
그 믿음은 오늘도 사랑으로, 정의로, 용서로
세상을 다시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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