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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과 짐 사이에서

제임스
2025-10-15 07:52 1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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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성경 말씀에 대한 묵상 수필입니다

 

선을 행하는 모든 이에게는 영광과 명예와 평화가 내릴 것입니다.” (로마 2,10)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 너희가 힘겨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워 놓고, 너희 자신들은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루카 11,46)

 

성지 순례를 다니다 보면 뜻밖의 감동을 받는 순간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나를 가장 놀라게 하는 이들은,

복음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손에는 성경책보다 더 많이 닳은 묵주 한 줄이 쥐어져 있고,

그들의 마음에는 논리보다 순수한 믿음 하나가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어린 나이의 순교자들을 떠올릴 때면

나는 늘 숙연해진다.

세상을 아직 다 알지 못하는 나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두려움 없이 십자가의 길을 걸어간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강하게 만들었을까?

율법과 교리를 다 알지 못해도,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단 한 가지 진리만으로

그들은 자신을 온전히 내어놓았다.

그들의 신앙은 머리의 이해보다

마음의 체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 사랑 하나가 그들에게는

지식보다 크고, 생명보다 귀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한다.

선을 행하는 모든 이에게는 영광과 명예와 평화가 내릴 것이다.”

그의 이 말씀은 단순한 약속이 아니라,

삶의 원리를 밝히는 진리다.

은 멀리 있는 위대한 행위가 아니라,

작은 일상 속의 사랑의 움직임을 뜻한다.

 

어두운 마음에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일,

지친 사람의 어깨에 조용히 손을 얹는 일,

그 모든 것이 하느님이 바라시는 의 형태다.

그 속에는 계산도, 조건도 없다.

단지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사랑의 울림이 있을 뿐이다.

그때 우리의 삶은 하느님께 향한 하나의 찬미가 된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영광과 평화는

그 사랑이 머문 자리에서 잔잔히 피어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율법 교사들을 향해

단호히 말씀하신다.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

그들은 율법을 누구보다 잘 알았지만,

그 지식이 사랑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사람들에게는 무거운 짐을 지우고,

정작 자신은 그 짐에 손끝 하나 대지 않았다.

그들의 말은 정의로웠으나,

그들의 손은 냉정했다.

그들의 눈은 하늘을 향했으나,

그들의 발은 사랑의 길에서 멀어져 있었다.

 

예수님의 이 꾸짖음은

단지 그들을 향한 비판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향한 경고의 말씀이다.

말로는 신앙을 고백하지만

행동으로는 그 믿음을 증명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묻고 계신다.

너는 누군가의 짐을 덜어 주고 있는가?

아니면 보이지 않게 더 얹고 있지는 않은가?

 

신앙의 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도, 언변도 아닌 공감과 실천이다.

남의 아픔 앞에서 잠시 멈추어 서는 마음,

쓰러진 이의 짐을 조금이라도 들어 올려 주는 손길,

그 안에 하느님의 나라가 깃든다.

진정한 율법 교사는

책 속의 문장을 외우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의 율법을 삶으로 써 내려가는 사람이다.

그의 발걸음은 조용하지만,

그 길 위에는 은총의 빛이 머문다.

 

오늘 하루,

나는 과연 어떤 신앙인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나의 말은 부드러웠지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있지는 않았는가.

나의 행동은 정의로워 보이지만

그 속에 정말로 사랑은 머물고 있었는가.

선을 행하는 이에게 약속된 영광과 명예와 평화

결코 먼 하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작은 사랑의 행동 속에서 이미 시작된 하느님의 선물이다.

그리고 그 선물은,

누군가의 짐을 함께 들어 준 그 순간,

이미 우리 마음 안에 조용히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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