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과 짐 사이에서
본문
오늘 성경 말씀에 대한 묵상 수필입니다
“선을 행하는 모든 이에게는 영광과 명예와 평화가 내릴 것입니다.” (로마 2,10)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 너희가 힘겨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워 놓고, 너희 자신들은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루카 11,46)
성지 순례를 다니다 보면 뜻밖의 감동을 받는 순간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나를 가장 놀라게 하는 이들은,
복음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손에는 성경책보다 더 많이 닳은 묵주 한 줄이 쥐어져 있고,
그들의 마음에는 논리보다 순수한 믿음 하나가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어린 나이의 순교자들을 떠올릴 때면
나는 늘 숙연해진다.
세상을 아직 다 알지 못하는 나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두려움 없이 십자가의 길을 걸어간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강하게 만들었을까?
율법과 교리를 다 알지 못해도,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단 한 가지 진리만으로
그들은 자신을 온전히 내어놓았다.
그들의 신앙은 머리의 이해보다
마음의 체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 사랑 하나가 그들에게는
지식보다 크고, 생명보다 귀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한다.
“선을 행하는 모든 이에게는 영광과 명예와 평화가 내릴 것이다.”
그의 이 말씀은 단순한 약속이 아니라,
삶의 원리를 밝히는 진리다.
‘선’은 멀리 있는 위대한 행위가 아니라,
작은 일상 속의 사랑의 움직임을 뜻한다.
어두운 마음에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일,
지친 사람의 어깨에 조용히 손을 얹는 일,
그 모든 것이 하느님이 바라시는 ‘선’의 형태다.
그 속에는 계산도, 조건도 없다.
단지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사랑의 울림이 있을 뿐이다.
그때 우리의 삶은 하느님께 향한 하나의 찬미가 된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영광과 평화는
그 사랑이 머문 자리에서 잔잔히 피어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율법 교사들을 향해
단호히 말씀하신다.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
그들은 율법을 누구보다 잘 알았지만,
그 지식이 사랑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사람들에게는 무거운 짐을 지우고,
정작 자신은 그 짐에 손끝 하나 대지 않았다.
그들의 말은 정의로웠으나,
그들의 손은 냉정했다.
그들의 눈은 하늘을 향했으나,
그들의 발은 사랑의 길에서 멀어져 있었다.
예수님의 이 꾸짖음은
단지 그들을 향한 비판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향한 경고의 말씀이다.
말로는 신앙을 고백하지만
행동으로는 그 믿음을 증명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묻고 계신다.
“너는 누군가의 짐을 덜어 주고 있는가?
아니면 보이지 않게 더 얹고 있지는 않은가?”
신앙의 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도, 언변도 아닌 공감과 실천이다.
남의 아픔 앞에서 잠시 멈추어 서는 마음,
쓰러진 이의 짐을 조금이라도 들어 올려 주는 손길,
그 안에 하느님의 나라가 깃든다.
진정한 율법 교사는
책 속의 문장을 외우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의 율법을 삶으로 써 내려가는 사람이다.
그의 발걸음은 조용하지만,
그 길 위에는 은총의 빛이 머문다.
오늘 하루,
나는 과연 어떤 신앙인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나의 말은 부드러웠지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있지는 않았는가.
나의 행동은 정의로워 보이지만
그 속에 정말로 사랑은 머물고 있었는가.
선을 행하는 이에게 약속된 ‘영광과 명예와 평화’는
결코 먼 하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작은 사랑의 행동 속에서 이미 시작된 하느님의 선물이다.
그리고 그 선물은,
누군가의 짐을 함께 들어 준 그 순간,
이미 우리 마음 안에 조용히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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