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다른 이름, 믿음’- 양주 성지성당에서
본문
아내와 함께하는 한글날 근처의 여정은 언제나 설렘으로 가득하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우리 부부는 그 변화의 향기를 따라 길을 나선다. 백담사의 고요한 물소리, 외설악의 붉은 단풍, 남이섬의 은행잎, 갈곡리 성지의 바람까지…
그 여정은 늘 새로운 만남이자, 오래된 감사의 되새김이었다.
올해는 어디로 갈까 하다가, 마음이 닿은 곳은 양주 성지성당이었다.
올해 3월에 준공되어 지난달 봉헌된 이곳은 아직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신앙의 새 터전이다. 주변에는 양주 관아와 향교, 그리고 무형유산 공연장이 함께 자리해 있어, 신앙과 문화가 조용히 어우러진 공간이었다.
이곳은 병인박해 때 목숨을 바친 다섯 순교자를 기리는 자리다.
예전엔 순교의 집행터였지만, 지금은 평화의 기도소리가 메아리치는 곳이 되었다.
성당은 작고 단정했다. 입구에는 순교자들이 붙잡혀 갈 때 목에 걸었던 칼 모양의 조형물이 세워져 있었다. 제대 옆에도 그 칼의 형상을 본뜬 꽃 장식이 놓여 있었다.
짧은 침묵 속에서 나는 ‘믿음의 결단’이란 말의 무게를 느꼈다.
조용히 미사가 시작되자 놀라운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다.
35년 전, 공릉동 성당에서 청소년 분과장을 맡았던 시절 나를 꾸르실요 교육을 보내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도록 이끌어 주셨던 한만옥 신부님께서 성사 전담 사제로 미사를 집전하러 오신 것이었다. 젊은 사제의 날렵한 모습은 사라졌지만, 세월이 빚어낸 은총의 기품이 그분의 몸짓과 음성 속에 흘러나왔다. 신부님은 과거 하계동 성당 대지를 마련하고, 신자들의 상당수를 교적에서 떼어 보내어 새로운 공동체의 씨앗을 심으셨던 분이다. 사목위원들도 1/3이 옮겨가서 기틀을 만들어 가도록 도와주셨다.
그 넉넉한 마음이 오늘 다시 내 기억 속에 따뜻하게 피어올랐다.
신부님은 강론에서 이렇게 물으셨다.
“어떤 여인이 성모님은 행복하다고 외쳤지만, 인간적으로는 어찌 행복하셨겠습니까?
아들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고통 속에서 많은 이들로부터 외면 당하며 먼저 세상을 떠나는 일을 겪으셨는데…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셨기에 참된 행복에 이르신 것입니다.”
그 말씀은 순교자들의 삶과 맞닿아 있었다.
세례를 받은 지 며칠 되지 않아 체포되어 고문을 당하고, 목이 베어 나간 사람들…
그들의 길이 어찌 인간적으로 행복했겠는가!
그러나 그들은 세상의 평안 대신 하느님의 자녀로 사는 길을 선택했고, 그 선택 안에 진정한 행복이 있었다.
“여러분도 목이 베일 것을 알고 이곳에 기쁨을 찾으러 온 것은 아니지요?”
신부님의 물음에 나는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기도드렸다.
“주님, 순교자들의 믿음을 저에게도 허락하소서.
작은 일상에서도 그 용기를 닮게 하소서.”
성당 뒤편의 십자가의 길을 따라 걸었다.
이곳의 14처의 십자가는 조금 달랐다.
예수님의 형상이 없고, 대신 철근만으로 만들어진 14처의 윤곽이 하늘을 향해 서 있었다.
그 단단한 선들이 오히려 더 깊은 상징으로 다가왔다.
12처 앞에서 문득 발걸음이 멈추었다.
붉은 풍선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예수님의 심장을 상징하는 표시였다.
바람에 흔들리는 붉은 빛을 바라보자 가슴이 저려왔다.
그분의 심장이 여전히 세상을 위해, 그리고 우리를 위해 뛰고 있는 듯했다.
그날, 양주의 하늘에서는 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바람은 순교의 기억을 따라 부드럽게 흘렀고,
나는 그 바람 속에서 깨달았다.
순교는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도 믿음의 선택으로 이어지는 현재의 이야기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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