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날, 이미 와 있는 나라
본문
“주님의 날이 다가온다.”(요엘 2,1)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루카 11,20)
서로 멀리 떨어진 듯한 두 말씀은, 그러나 한 줄기 빛처럼 하나로 이어져 있었다.
요엘 예언자는 ‘주님의 날’을 외친다. 그날은 어둡고 두려운 날로 묘사된다.
인간이 스스로의 욕심과 교만 속에 갇혀 하느님을 잊었을 때, 세상의 질서는 흔들리고 대지는 떨린다. 그러나 그 경고는 단순한 심판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안의 잠든 영혼을 깨우는 하느님의 알람소리,
“깨어나라, 돌아오라”는 부드러운 초대의 울림이다.
“나팔을 불어라.”
그 소리는 멀리 있는 누군가를 향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안을 향해 울린다.
하느님께서 다시 중심에 서시기를, 내가 그분께 되돌아가기를 바라는 부름이다.
그날은 두려움의 날이면서 동시에 회복의 날이다.
우리가 세속의 어둠 속에서 헤매다가 눈을 들어 하느님의 빛을 바라볼 때,
‘다가오는 날’은 더 이상 멸망의 날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새로운 시작이 된다.
루카 복음에서 예수님은 전혀 다른 어조로 말씀하신다.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요엘이 외쳤던 ‘그날’이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실현되고 있음을 알리는 선언이다.
‘하느님의 손가락’—그 표현은 출애굽기에서 모세가 돌판 위에 율법을 받을 때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글자가 새겨졌다는 말씀을 떠올리게 한다.
이제 그 손가락이 예수님의 손끝에서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마귀를 몰아내는 그분의 손짓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하느님의 다스림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드러내는 표징이다.
하느님의 나라는 저 먼 하늘에서 기다려야 할 약속이 아니다.
사랑과 용서가 이루어지는 지금 이 순간마다,
그 나라는 이미 우리 안에서 자라고 있다.
요엘의 “다가오는 날”과 예수님의 “이미 와 있는 나라”.
두 말씀은 시간의 경계를 넘어, 우리에게 같은 진리를 전한다.
하느님의 역사는 **‘아직 오지 않았으나 이미 시작된 여정’**이라는 것.
그분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은 먼 미래를 바라보며 손을 놓고 있지 않는다.
오늘의 일상 속에서도, 작은 사랑 하나, 용서 한마디 속에서도
그 나라가 피어나고 있음을 믿는다.
창밖의 빛이 천천히 방 안으로 스며든다.
요엘이 외친 나팔 소리, 예수님의 손끝에서 울린 하느님의 손길이
지금 내 마음속에서도 잔잔히 퍼져나간다.
하느님의 날은 언젠가 다가올 사건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서 시작된 변화의 순간이다.
그 나라를 향한 여정은 먼 길이 아니라,
오늘의 선택 속에 있다.
나는 오늘 다시 조용히 다짐한다.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내 안에 와 있음을 믿고,
그 나라의 백성답게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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