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마음의 문을 여는 빛
본문
“나의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움의 태양이 날개에 치유를 싣고 떠오르리라.” (말라 3,20)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루카 11,10)
며칠째 흐린 하늘이 계속되더니, 어제 아침에는 창문 사이로 한 줄기 햇살이 스며들었다.
그 순간 방 안의 공기마저 달라졌다. 차갑던 공간이 서서히 따뜻해지고, 마치 오래된 그림 속에서 한 조각의 생명이 깨어나는 듯했다. 나는 그 빛을 바라보다가 문득 오늘의 성경 구절이 떠올랐다.
‘의로움의 태양이 날개에 치유를 싣고 떠오르리라.’
그 빛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내 마음의 닫힌 문을 두드리는 하느님의 손길 같았다.
우리는 때로 스스로를 세상으로부터, 그리고 하느님으로부터 닫아걸고 살아간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실망하지 않기 위해 아예 문을 닫고 열쇠를 숨겨 버린다.
하지만 그런 마음의 방 안에서는 햇살도, 바람도, 노래도 들어올 수 없다.
그저 고요하고, 차갑고, 무겁다.
그런 우리에게 하느님은 말씀하신다.
“나의 이름을 경외하는 이에게, 의로움의 태양이 떠오르리라.”
태양은 새벽을 밀고 들어오는 빛이다.
절망의 긴 밤이 아무리 짙어도 새벽을 막을 수는 없다.
빛은 언제나 어둠의 틈을 찾아 들어오며,
그 빛에는 치유가 실려 있다.
그 치유는 상처를 잊게 만드는 망각의 힘이 아니라,
상처를 부드럽게 감싸며 다시 살아가게 하는 회복의 은총이다.
그러나 빛이 들어오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창문을 조금이라도 열어야 한다.
어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셨듯이, 오늘은 기도하는 자세를 우리에게 일깨워 주신다.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이 말씀은 하느님께로 향한 우리의 응답을 요구한다. 그분의 태양이 떠오를 준비가 되어 있다면, 우리는 그 빛을 향해 문을 열어야 한다.
청하지 않는 이에게는 줄 수도 없고,
찾지 않는 이에게는 보여줄 수도 없으며,
두드리지 않는 문은 열리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는 때로 아무 응답도 없는 듯 느껴질 때가 있다.
기도해도, 찾아도, 두드려도
아무 변화가 없는 세월이 길어질 때
사람은 포기하고 싶어진다.
“하느님은 내 목소리를 듣고 계신가요?”
이 질문이 마음을 가득 채울 때가 있다.
그러나 빛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미 떠오르고 있다.
산 뒤편에서부터, 수평선 너머에서부터
그분의 빛은 조용히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
우리가 아직 그 빛을 보지 못했을 뿐이다.
하느님은 결코 닫힌 문 앞에서 돌아서지 않으신다.
그분은 조용히 기다리신다.
우리가 스스로의 문을 여는 그 순간을.
기도는 어쩌면 빛이 문을 두드리는 행위이자,
우리가 빛을 향해 문을 여는 행위이다.
이 두 움직임이 만나는 지점에서 하느님의 응답이 일어난다.
기도의 응답은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도 고려하시어
“주님, 당신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그 순간 내 안의 어둠이 물러가고,
그분의 태양이 날개에 치유를 싣고 내 마음에 떠오른다.
삶을 살다 보면 닫힌 마음의 문이 하나둘 늘어갈 때가 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예상치 못한 상처, 혹은 반복되는 실패 속에서
조금씩 마음을 굳게 닫아 버리곤 한다.
그러나 신앙은 바로 그 문을 여는 용기다.
하느님의 태양은 문밖에 서서 기다리고 있고,
그분의 손은 여전히 조용히 노크하고 있다.
오늘 나는 다시 한 번 내 마음의 문을 바라본다.
두꺼운 문을 조금만 열어도 그 틈새로 들어오는 빛은 놀랍도록 따뜻하다.
그 빛은 말라키가 전한 의로움의 태양,
루카가 들려준 기도의 응답,
그리고 내 안에 새 생명을 일으키는 하느님의 숨결이다.
하느님께서 나를 향해 문을 두드리셨듯,
이제는 내가 세상을 향해 또 다른 닫힌 마음들을 두드릴 차례다.
그렇게 누군가의 어둠 속에
한 줄기 빛이 스며들기를 바라며,
오늘도 나는 조용히 문을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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