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 > 자유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자유게시판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

제임스
2025-10-05 09:00 69 0

본문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두려움의 영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다고 하셨다. 이 말씀은 늘 내 마음을 깊이 울린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힘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말하는 힘이란, 대부분 외적인 능력이나 세속적 영향력을 가리킨다. 성공을 쟁취하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며, 누군가를 설득하는 힘. 하지만 바오로 사도가 말한 은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면의 중심을 흔들리지 않게 붙드는 힘, 믿음을 잃지 않게 하는 용기이다. 그런 힘은 고난 속에서도 주저앉지 않고, 불의한 세상 속에서도 정의를 향해 나아가게 한다. 사람을 누르거나 지배하는 힘이 아니라, 끝까지 사랑을 포기하지 않게 하는 힘이다.


    몇 해 전, 한 노신부님을 만난 적이 있다. 어느 작은 공소에서 미사를 봉헌하던 날, 예기치 않게 전기가 나갔다. 성전 안은 금세 어둠에 잠겼고, 제대 위의 초 한 자루만이 희미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신부님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으셨다. 그 낮고 단단한 목소리로 기도문을 이어가셨다. 어둠 속에서 울려 퍼지는 그 목소리는, 마치 한 송이 불빛처럼 내 마음을 비쳤다. 그날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하느님께서 주신 힘이란,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평정이구나.”

하지만 그 힘은 사랑과 절제가 함께할 때 비로소 온전해진다. 사랑이 없는 힘은 폭력이 되고, 절제가 없는 사랑은 감정의 파도에 휩쓸린다.

그래서 바오로는 세 가지를 함께 말했다.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 사랑은 힘을 부드럽게 다듬고, 절제는 사랑을 깊게 만든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단지 따뜻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기다림의 예술이며, 인내의 길을 걷는 일이다. 상대를 바꾸려 하기보다 내 마음을 다스리고, 그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기다리는 일.

그것이 절제요,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다.


    살다 보면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하고, 마음이 다칠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절제는 우리를 지켜주는 방패가 되어 준다. 화를 삼키고, 분노를 잠재우며, 침묵 속에서 주님의 뜻을 기다리는 그 시간 그 고요 속에서 성령이 주시는 평화가 우리 마음에 자리 잡는다.

루카 복음에는 또 다른 말씀이 있다.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처음에는 이 말이 차갑게 느껴졌다. ‘쓸모없는 종이라니우리의 수고가 무가치하다는 뜻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그 말이 지닌 깊은 뜻이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그것은 자존심을 누르는 말이 아니라, 겸손의 완성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 봉사와 헌신, 그리고 선행조차도 결국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사명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내가 했다라고 말할 수 없게 된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깨닫는다.

우리는 하느님의 손에 들린 도구요, 그분의 뜻이 흘러가는 통로에 불과하다는 것을.

 

    코로나가 한창이던 어느 사순 시기, 성당 청소조차도 꺼리던 때가 있었다. 그때 한 자매님이 묵묵히 성당 대청소를 하며 말했다.

이 일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겠지만, 성당에 오는 누군가가 깨끗한 성당을 보고 기도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요.”

그 말이 내 마음에 오래 남았다. 그 말은 바로 쓸모없는 종의 참뜻이었다. 인정받지 않아도 기쁘게, 누가 보지 않아도 묵묵히 하는 일. 그것이 믿음의 사람 자리였다.

성령께서 주신 힘과 사랑, 절제의 영으로 맡은 일을 끝까지 감당하되, 그 모든 일을 마친 뒤에는 겸손히 고개 숙여 고백하는 것이다.

저는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세상은 성공을 외치지만, 신앙은 충실을 말한다.

세상은 결과를 평가하지만, 주님은 과정을 바라보신다.

세상은 능력을 칭송하지만, 주님은 사랑과 절제를 귀히 여기신다.

결국 힘과 겸손은 서로를 향한 순환의 길이다. 힘이 사랑으로 쓰일 때, 그 사랑은 절제로 아름다워지고, 절제는 겸손으로 완성된다. 그 길을 걷는 사람의 마음에는 두려움이 머물 틈이 없다. 그 안에는 오직 평화와 감사, 그리고 성령의 고요한 숨결만이 남는다.

    
언젠가 나도 주님 앞에 서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날 나는 이렇게 고백하고 싶다.

주님, 두렵고 부족했지만, 주신 힘으로 사랑하려 애썼고, 사랑 속에서 절제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알겠습니다. 제가 한 일은 모두 은총이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조용히 미소 지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너는 해야 할 일을 다 하였구나.”

댓글목록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쓰기

적용하기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가톨릭출판사 천주교서울대교구 cpbc플러스 갤러리1898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굿뉴스 가톨릭대학교 가톨릭신문
게시판 전체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