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길 위에 선 번역자 ― 성 예로니모
본문
우리가 오늘 손에 쥐고 있는 성경 책은 오랜 여정의 결실입니다. 마치 강물이 수많은 골짜기와 들판을 지나 바다에 이르듯, 성경은 수천 년 동안 여러 언어와 문화의 옷을 입으며 오늘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히브리어와 아람어, 그리스어로 쓰인 말씀은 수많은 번역자들의 손을 거쳐 라틴어, 영어, 한국어, 그리고 세계 모든 언어로 옮겨졌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한 사람, 성 예로니모의 이름은 유난히 빛납니다.
언어의 강을 건너다
초대 교회의 신자들은 주로 그리스어로 된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70인역 성경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유다인 공동체가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옮긴 이 책은, 예수님과 사도들조차 인용할 만큼 교회 안에서 널리 쓰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로마 제국의 언어는 점차 라틴어로 바뀌었고, 신자들은 더 이상 그리스어에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자연스럽게 라틴어 성경이 곳곳에서 번역되었지만, 그 질은 제각각이었습니다. 같은 말씀도 공동체마다 다르게 읽히니, 당시 교회 신앙 공동체마다 성경 번역이 달라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4세기 말 교황 다마수스 1세는 일관되고 정확한 라틴어 성경을 원했습니다. 그때 교황은 성 예로니모에게 요청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하나의 목소리로 들려주시오.” 언어의 강을 건너는 번역자의 사명을 맡긴 것입니다. (382년 경)
사막에서의 수련
예로니모의 젊은 날은 학문과 열정으로 가득했지만, 동시에 방황과 번민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세상의 지혜와 말씀 사이에서 그는 종종 갈등했고, 결국 진리를 향한 갈증은 그를 사막으로 이끌었습니다.
시리아 사막의 고요한 황무지에서 예로니모는 수도자로 살았습니다. 낮에는 뜨거운 햇살이 돌을 달구었고, 밤에는 바람이 메마른 흙 바닥을 스쳤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금식하며 성경을 읽고, 내면의 욕망과 맞서 싸웠습니다. 사막은 그의 영혼을 단련시키는 용광로였습니다.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라는 그의 확신은 바로 그 고독과 투쟁 속에서 빚어진 것입니다.
베들레헴의 작은 방에서
사막의 세월을 지나, 그는 결국 성지 베들레헴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예수님이 태어나신 동굴 곁에 작은 거처를 마련하고, 그곳에서 밤낮으로 성경 번역에 매달렸다고 합니다.
베들레헴의 밤은 조용했습니다. 작은 등잔 불 아래에서 그는 닳아진 두루마리를 펼쳐 놓고, 히브리어 단어 하나하나를 새기듯 라틴어로 옮겼습니다. 때로는 한 문장을 두고 며칠을 씨름하며, 답을 얻지 못하면 무릎 꿇고 기도했습니다. 그의 책상은 단순한 작업대가 아니라 제단이었고, 그의 펜은 기도의 도구였습니다.
그렇게 평생을 바쳐 완성한 라틴어 성경은 훗날 “불가타(Vulgata)”, 곧 “보편역”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불가타, 보편의 성경
불가타는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서방 교회의 표준 성경이 되었고, 교부들과 수도자들, 학자들과 평신도들의 영혼을 길렀습니다. 중세 유럽의 문학과 예술, 철학과 신학은 모두 이 성경의 뿌리 위에서 꽃 피웠으며 불가타 성경은 이후 각 나라 언어로의 성경 번역(루터의 독일어 성경, 킹제임스 영어 성경 등)에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이 성경을 공식 성경으로 확정했고, 20세기 들어 새롭게 교정된 네오 불가타가 교회의 표준으로 이어졌습니다. 오늘 우리가 한국어로, 영어로, 일본어로, 수백 개의 언어로 성경을 읽을 수 있는 길은 바로 이 불가타의 전통 위에서 열린 것입니다.
말씀을 삶의 언어로 번역하다
예로니모 성인의 삶은 단순한 학자의 열정이 아니라, 말씀을 오늘의 언어로 살아 있게 만들려는 신앙인의 헌신이었습니다. 그는 성경을 단지 종이에 새기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사람들이 자기 언어로 하느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번역자입니다. 말씀은 단순한 고대 언어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나의 언어로 옮겨져야 합니다. 가정에서는 사랑의 말로, 일터에서는 정직의 말로, 공동체 안에서는 화해와 용서의 말로 번역되어야 합니다.
살아 있는 번역본이 되어
베들레헴의 동굴에서 밤을 지새우며 단어 하나하나를 새겼던 예로니모 성인의 모습은, 오늘 우리에게도 깊은 도전을 줍니다. 그가 말씀을 번역했다면, 우리는 말씀을 삶으로 번역해야 합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내 말씀을 어떻게 네 삶 속에 새기고 있느냐?”
우리가 곧 살아 있는 번역본입니다. 사람들이 우리 삶을 보고 말씀의 빛을 느낀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충실한 성경 번역일 것입니다.
댓글목록0
댓글 포인트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