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성과 제자의 길
본문
살아가다 보면 문득 이런 질문이 마음을 스칩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마지막 날까지 어떤 길을 걸어야 할까?”
하고 싶은 일들은 끝없이 솟아 오르고, 그때마다 마음은 버킷 리스트로 채워집니다. 하지만 하나를 이루어도 곧 또 다른 욕망이 피어나고, 만족은 잠시 뿐, 뒤이어 공허와 후회가 따라옵니다. 인간의 연약함이란 결국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 같음을 깨닫게 됩니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 임금 앞에 선 느헤미야의 얼굴은 그날따라 무거운 그림자에 덮여 있었습니다. 늘 웃음을 잃지 않던 그였지만, 불타 버린 성문과 무너진 예루살렘의 도성은 그의 가슴을 깊이 눌러왔습니다. 임금의 물음 앞에 그는 떨리는 마음으로 간청합니다.
“저를 조상들의 도성으로 보내 주시어, 그곳을 다시 세우게 해 주십시오.”
왕궁의 평안함을 내려놓고, 폐허가 된 성을 향해 걸어가려는 그의 결심은 기도로 다져진 용기였습니다. 그 청원은 마침내 길을 열었습니다.
예수님의 곁에서도 닮은 장면이 이어집니다.
“어디로 가시든지 따르겠습니다.” 하고 다짐한 이에게 예수님은 뜻밖의 말씀을 건네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조차 없다.”
제자의 길은 안락함을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또 어떤 이는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나서 따르겠다고 했지만, 예수님은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두어라. 너는 가서 하느님 나라를 알려라.” 하십니다. 마지막 인사라도 하고 싶다는 이에게는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단호히 말씀하셨습니다.
제자의 길은 뒤돌아봄을 허락하지 않는, 오직 앞을 향한 전적인 헌신이었습니다.
느헤미야와 예수님 앞에 선 제자 지망자들 사이에는 하나의 공통된 울림이 있습니다. 그것은 소명의 부르심 앞에서의 결단입니다. 느헤미야는 왕궁의 안락함을 버리고 폐허의 도성을 택했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집과 가족, 장례와 작별보다 먼저 하느님 나라를 따르라고 요구하셨습니다. 머뭇거림 대신 헌신, 안락함 대신 사명을 택하라는 부르심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무너진 성이 있습니다.
애써 눈을 돌리고 싶지만, 언젠가는 다시 세워야 할 성벽 같은 과제가 있습니다. 또한 마음속에는 늘 뒤를 돌아보고 싶은 유혹이 고개를 듭니다. 익숙한 삶, 놓치고 싶지 않은 관계, 머물고 싶은 자리들. 그러나 주님은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너는 가서 하느님 나라를 알려라.”
느헤미야가 두려움 속에서도 무릎 꿇고 기도하며 용기를 냈듯, 우리 또한 주님 앞에 나아가 새로운 결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원하신 것은 완벽한 준비가 아니었습니다. 다만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믿음의 걸음이었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에게 다정히 물으십니다.
“네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그리고 다정히 이르십니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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