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증거
본문
“우리는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즈카르야 8,23)
이 말씀은 언제나 제 마음을 깊이 울립니다. 신앙은 단순히 내 안에 숨겨 두는 개인적인 믿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고 귀에 들려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기 때문입니다. 내가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누군가의 눈길과 입술을 통해 “하느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다”는 고백이 흘러나오게 하는 길입니다. 누군가의 입에서 그런 고백이 터져 나온다면, 그것은 성경 구절보다도 더 확실한 복음의 증거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은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바쁜 삶 속에서 우리는 종종 기도할 시간을 놓치고, 신앙보다는 현실의 무게에 더 쉽게 흔들립니다. 작은 시련 앞에서 불평을 늘어놓을 때도 있고, 마음이 지칠 때는 신앙을 의무처럼만 붙잡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 문득 돌아보면,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는 증거’를 세상에 보여주기는커녕, 오히려 흐릿하게 가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나는 어린 시절, 성당 마당에서 어른들이 서로 손을 잡고 환하게 웃던 모습을 기억합니다. 아직 신앙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어린 눈에도, 그 모습은 따뜻하고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성경책을 펴 들고 있던 장면보다도, 함께 나누던 작은 미소와 정겨운 인사가 더 큰 증거가 되었습니다. 아마도 바로 그런 순간이었을 겁니다. 누군가가 “저들 안에 하느님이 계시구나” 하고 느끼게 되는 자리는 특별한 기적 속이 아니라, 그렇게 소박한 순간 속이었습니다.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루카 9,51)
이 구절은 예수님의 결연한 발걸음을 떠올리게 합니다.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라는 이름과 달리, 예수님께 고난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자리였습니다. 누구라도 피하고 싶었을 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머뭇거리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마음을 굳히시고, 흔들림 없이 그 길을 향해 나아가셨습니다.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시는 예수님의 길은 사람들 눈에는 패배의 길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제자들마저 두려움에 떨었고, 군중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단은 하느님의 계획 안에서 가장 큰 승리로 드러났습니다. 십자가는 죽음이 아니라 부활의 문이 되었고, 예루살렘으로 향한 발걸음은 온 인류를 구원하는 여정이 되었습니다.
나는 이 장면 앞에서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무엇을 향해 마음을 굳히고 있는가?”
혹시 편안함과 안락함을 지키기 위해서만, 나만의 울타리 안에서 안전하게 살고자 하는 결심에 머무르지는 않는가? 아니면 사랑을 선택하기 위해, 때로는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내어놓는 결단을 하고 있는가?
세상은 우리가 십자가를 지는 모습에서,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태도에서,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는 용기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용서할 때, 손해라는 것을 알면서도 무릅쓰고 선을 선택할 때, 그 순간이 바로 “하느님이 함께 계신다”는 증거가 됩니다. 뿐만 아니라, 함께 기도하며 밥을 나누던 식탁의 자리에서도, 봉사활동을 마친 뒤 서로의 땀을 닦아 주며 웃던 순간에서도, 또 평범한 치킨과 맥주를 나누던 자리에서도, 우리가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무리할 때, 거기서도 “하느님이 함께 계신다”는 증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하느님이 함께하신다’는 말은 화려한 기적을 통해서만 들려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작은 삶 속에서 울려 퍼집니다. 병든 아이 곁을 밤새 지키며 기도하는 어머니의 눈물, 정직하게 땀 흘리며 리어카를 끌고 살아가는 할아버지의 손, 작은 친절과 미소로 이웃을 위로하는 사람들의 발걸음 속에서, 세상은 하느님의 얼굴을 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던 굳은 결심은 오늘 우리의 삶 안에서도 반복됩니다. 비록 힘들고 외로운 길일지라도, 주님께서 함께하신다는 믿음으로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 그 길은 결국 하느님의 길이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바라보며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십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주님의 길을 충실히 걷고 있다는 징표이며, 동시에 최대의 찬사일 것입니다.
오늘도 저는 제 마음속에 조용히 다짐해 봅니다.
주님, 제가 제 길을 걸어가며, 누군가의 눈과 귀에 “하느님이 그와 함께 계신다”는 말이 들려오게 하소서. 그것이 제 인생의 가장 큰 영광이자,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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