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편, 정과 향기를 빚는 한가위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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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의 가장 즐거운 명절, 추석이 다가온다. 어릴 적 나는 식구들과 함께 송편을 빚곤 했다. 산에 올라 솔잎을 따오던 기억도 아련히 떠오른다. 그때의 웃음소리와 정겨움은 지금도 마음을 따뜻하게 덮어 준다.
사실 송편은 원래 추석에만 먹는 떡은 아니었다. 조선 후기 1849년에 간행된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송편은 정월 대보름에도 만들었다. 온 가족과 노비들까지 나이 수대로 나누어 먹으며 한 해의 액운을 막고 복을 기원했는데, 젊은 이들이 더 달라 하면 “내년, 내후년에 나이를 더 먹으면 더 얻을 수 있다”라며 웃어넘겼다고 한다. 중화절(음력 2월 1일)에는 풍년을 기원하며 ‘나이떡’이라 불리기도 했고, 초파일이나 삼짓날, 단오절에도 송편을 즐겼다. 그중에서도 추석 송편은 햅쌀로 빚은 ‘오려송편’이라 하여 더욱 특별했다.
6·25 전쟁 이후 1960년대까지 쌀 부족으로 힘겹게 살던 시절을 지나, 1970년대 통일벼의 등장으로 쌀 자급이 가능해졌다. 이때부터 추수의 기쁨을 나누며 추석에는 집집마다 온 가족이 모여 송편을 빚어 먹는 풍습이 정착되었고, 쌀막걸리도 그 무렵 다시 살아났다.
송편은 맵쌀가루를 쪄낸 반죽에 콩고물, 깨, 팥 앙금, 밤이나 콩 알갱이에 꿀과 설탕을 더해 속을 채운다. 나 역시 콩보다는 깨가 들어있는 송편을 먹기 위해 어머니 몰래 송편을 반으로 쪼개어 콩이 나오면 다른 것들 밑에 숨기고, 깨가 들어 있는 것만 골라 먹던 추억이 있다.
“처녀가 송편을 예쁘게 빚으면 좋은 신랑을 만난다.”,
“임산부가 송편을 예쁘게 빚으면 예쁜 딸을 낳는다.”는 속담처럼 송편 빚기는 솜씨와 정성을 겨루는 놀이이자 축제였다.
송편을 찔 때 솔잎을 까는 까닭은 단순히 향을 더하기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서로 들러붙지 않고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는 지혜였으며, 솔잎 속 피톤치드가 방부 효과를 내어 저장성을 높여 주기도 했다.
송편과 얽힌 이야기 중 하나가 숙종 때 전해 내려온다. 어느 날 남산골 야간 순시 중 가난한 선비 집에서 글 읽는 소리를 들은 숙종은, 아내가 내놓은 송편 두 개 중 하나를 먹고 다른 하나를 아내 입에 넣어 주는 모습을 보았다. 그 정다움에 감동한 왕은 궁에 돌아와 왕후에게 송편을 청했지만, 푼주에 높이 쌓인 송편을 보고는 “내가 돼지냐?” 하고 불편한 심정을 드러냈다. 여기서 “푼주의 송편이 주발 뚜껑 송편 맛보다 못하다”라는 속담이 생겨났다. 음식의 참맛은 양이 아니라 정성과 사랑이 더해질 때 비로소 깊어진다는 교훈이다.
다가오는 추석!
가족과 함께 송편을 빚어 보는 것은 어떨런지요. 솔잎 향 가득한 송편에 정을 담아 나누며, 우리 마음속에도 오래도록 남을 따뜻한 추억을 새겨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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