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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계시는 주님, 고난 속에 머무시는 주님

제임스
2025-09-27 07:18 13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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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제 가서 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즈카 2,14)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루카 9,44)

낯선 길을 걸을 때면 종종 홀로 있다는 두려움이 몰려옵니다. 누구와도 연결되지 않은 듯한 고립감, 앞날을 알 수 없는 막막함이 우리의 발걸음을 무겁게 합니다. 그러나 그런 순간, 내면 깊숙이 스며드는 약속의 음성이 들립니다.

내가 이제 가서 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주님은 멀찍이 서서 우리의 여정을 바라보는 분이 아니라, 우리 삶의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오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집과 마을, 기쁨과 상처 속으로 오셔서 함께 머무르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유배에서 돌아와 황폐한 성전을 바라보던 때, 그들의 마음은 허무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돌 하나 세우는 일조차 벅찼고, 다시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이 그들을 짓눌렀습니다. 그때 예언자의 입술을 통해 들려온 주님의 말씀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삶을 다시 세울 수 있는 힘이었습니다.

내가 너희 가운데 머무르리라.”

이 말씀은 무너진 땅 위에 희망을 다시 일으키는 초대였습니다.

그런데 루카 복음은 우리를 한 걸음 더 깊은 진실로 이끕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약속은 단순히 평안과 위로의 자리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고통의 자리, 외면당하고 배반당하는 자리, 심지어 죽음의 자리까지 내려오십니다. 인간의 손에 넘겨지고, 조롱과 폭력에 내맡겨지는 그 길에까지 주님은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이 지점에서 신앙의 신비가 드러납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원할 때만 곁에 계신 분이 아닙니다. 기쁘고 화려한 순간에만 동행하시는 분도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가장 약하고 무너지고 홀로 남겨진 자리, 우리가 감히 들어가기를 두려워하는 그 어둠 속에 더 깊이 들어오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먼저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와 함께 있다.”

돌이켜보면, 주님의 현존을 가장 강하게 느꼈던 순간은 오히려 고통의 때였습니다. 병실의 침묵 속에서, 관계가 끊어져 마음이 얼어붙었을 때, 혹은 실패와 좌절로 세상이 무너지는 듯했을 때마다, 희미하게나마 주님이 곁에 계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는 나에게 어떤 존재일까?라는 물음 앞에서, 나는 이렇게 고백하게 됩니다. “그분은 언제나 내 곁에 계시는 분이십니다.”

결혼식장에서 흔히 듣는 말이 있습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괴로울 때도 서로를 사랑하겠습니까?” 주님이 우리 곁에 계신 것처럼, 우리도 그럴 수 있느냐는 물음이 떠오릅니다. 주님이 주신 약속 내가 너와 함께 머무르리라는 눈물과 한숨이 스며 있는 삶의 가장 깊은 자리에 들어와 계시는 은총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붙들어야 할 믿음은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성취와 영광의 자리에만 머무르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대신해 넘겨지고, 배반당하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분입니다. 그분의 현존은 화려한 빛으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가장 깊은 어둠을 관통하며 빛을 비추는 현존입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기도합니다.

주님, 제 삶의 한가운데에 오셔서 머무르소서. 제가 기뻐할 때에도, 제가 무너질 때에도, 저를 떠나지 마시고 저와 함께 머무르소서. 당신께서 고난의 손길에 넘겨지셨듯, 저도 제 십자가를 받아 안고 당신과 함께 걸어가게 하소서.

그렇게 주님은 내 안에서, 우리 공동체 안에서, 세상 한복판에서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제 가서 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그리고 동시에 이렇게 고백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이 두 말씀을 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임마누엘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신비를 이해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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