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돌이켜 보라
본문
「너희는 이제 너희의 처지를 곰곰이 생각하여 보아라.」(학개 1,5)
이 말씀은 마치 조용한 아침, 거울 앞에 선 나를 비추는 듯합니다. 분주한 하루를 시작하기 전, 잠시 걸음을 멈추고 지난날을 돌아보라는 초대입니다. 내 걸음은 어디를 향해 있었는지, 무엇을 소중히 품으며 살아왔는지, 그리고 그 길 끝에는 어떤 열매가 맺혀 있는지를 묻습니다.
살다 보면 우리는 저마다 자기 집을 꾸미는 일에 몰두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 집은 단지 벽돌과 기둥의 문제가 아니라, 나만의 안락과 안전을 지키려는 작은 성벽이기도 합니다. 학개 예언자는 묻습니다. 「너희는 너희 각자 자기 집을 지으려고 서두르면서, 이 집은 이렇듯 무너진 채로 두고 있느냐?」(학개 1,9) 이는 우리가 삶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었는지를 비추어 주는 질문입니다.
루카 복음은 또 다른 장면을 보여 줍니다. 「그때에 분봉 왕 헤로데는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에 대하여 듣고 몹시 당황하였다.」(루카 9,7) 권력의 정상에 선 그조차 예수님의 행적 앞에서는 불안을 느꼈습니다. 세상의 권좌가 주는 안정은 단단해 보였지만, 이미 그 경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빛과 생명이 자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길을 돌이켜 보라는 초대와, 권력의 중심에서 당황하던 헤로데의 모습은 내 삶을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나 역시 불현듯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다. 내가 쌓아 올린 성벽이 무너질까 두렵고, 붙잡고 있던 것들이 사라질까 불안합니다. 그러나 어쩌면 그 순간이야말로 주님께서 내 삶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신다는 신호일지 모릅니다.
길을 돌이켜 본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거나 후회하는 일이 아닙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주님이 하시는 일을 알아차리는 눈을 갖는 것입니다. 두려움 대신 희망을, 안일 대신 주님의 집을 먼저 세우려는 결단을 내리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나는 이 기도로 길을 시작합니다.
“주님, 제가 걸어온 발자국마다 당신이 함께하셨음을 잊지 않게 하소서. 아직도 당황하며 머뭇거리는 제 마음을 비추어 주시고, 두려움이 아니라 희망으로, 나의 성벽이 아니라 주님의 집을 세우는 삶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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