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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림의 은총, 파견의 은총

제임스
2025-09-24 08:23 14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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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즈음 젊은이들은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전세라도 얻어 결혼 생활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제가 결혼할 당시만 해도 그런 여건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집 한 채 없이 간신히 빚을 내어 방 한 칸을 얻어, 세 식구가 옹기종기 살던 시절이었습니다. 주변에 새 아파트들이 줄줄이 들어서고 있었지만, 정작 내가 들어갈 자리는 하나도 없는 듯했습니다. 입에서는 탄식이 흘러나왔습니다.

    그 시절 먹던 쌀은 맛도 없는 통일벼, 그것도 2~3년 묵은 것이었지요. 정상가의 1/4 값에 구할 수 있었지만, 오래 묵은 쌀로 끼니를 때우며 ‘경제적 포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성당에 빠지지 않고 나가고, 작은 봉사라도 하며 언젠가는 이 고단한 삶으로부터 해방될 날이 오리라 믿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와 황폐한 땅 위에 서 있던 모습이 꼭 그와 같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무너진 성벽과 성전, 메마른 삶의 흔적 앞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한낱 종살이하던 백성임을 절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종살이하는 저희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자애를 베푸시어 저희를 되살리셨습니다.”(에즈 9,9)

그 고백은 단순히 정치적 해방이 아니라, 결코 버려두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인간이 스스로 무너져 다시는 일어설 수 없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하느님은 자애로 붙들어 주시고 무너진 삶을 다시 세워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복음은 이 믿음을 한 걸음 더 확장시킵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시고, 단순히 곁에 두는 데 그치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마귀를 쫓아내고 질병을 고치는 힘과 권한을 주셨다. 그리고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 주라고 보내셨다.”(루카 9,1-2)

하느님께로부터 되살림의 은총을 받은 제자들은, 이제는 다른 이들을 살리는 은총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은총은 머무는 자리가 아니라, 나누는 자리로 이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돌아보면 우리 삶에도 이런 순간이 있지요. 더는 못 일어나겠다 싶었던 시간, 그러나 뜻밖의 누군가의 손길을 통해, 기도의 위로를 통해, 성사의 은총을 통해 다시 일어섰던 기억들 말입니다. 그때 우리는 깨닫습니다. 나를 되살리신 하느님은 나를 그저 살려 두신 것이 아니라, 다른 이를 살리라고 파견하신 분이라는 것을.

오늘 내가 만나는 누군가가 내 작은 손길, 따뜻한 말 한마디, 진심 어린 기도를 통해 회복될 수 있다면, 그것은 예수님께서 내게도 그 권한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병든 이를 고쳐 주고, 낙담한 이를 일으켜 세우며, 세상 속에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일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살아 있음 자체가 이미 되살림의 증거이고, 세상 속으로의 파견임을 기억하는 것,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됩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다시 살려 주셨듯, 이제 나 또한 그분의 사랑을 들고 누군가를 살리러 떠나야 합니다. 그 길 위에서 비로소 나의 삶은 은총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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