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성전, 살아가는 가족
본문
돌 위에 돌을 쌓는 일은 단순한 노동이 아닙니다. 그 돌 하나하나에는 사람들의 땀방울이 스며 있고, 손마디의 굳은살과 함께 긴 세월의 사연이 묻어 있습니다. 저도 오래전 이문동 성당을 지을 때 벽돌을 나르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의 벽돌은 단순한 건축 자재가 아니라, 하느님께 드리는 마음의 고백이자 공동체의 희망이었습니다. 우리 본당도 마찬가지였습니다. 33년 전, 택시조합 회사의 땅을 매입하여 천막을 치고, 신자들이 함께 벽돌을 쌓아 올리던 그 날들이 있었습니다. 비록 비바람이 들이치고 땅은 질퍽였지만, 그 속에서 신앙의 불씨는 더욱 단단히 타올랐습니다.
유배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도 그러했습니다. 황폐한 땅 위에 다시 성전을 세우면서, 그들은 단순히 건물을 복원한 것이 아니라 잃었던 희망을 다시 세웠습니다. 무너진 성전은 무너진 신앙의 상징이었고, 다시 세워진 성전은 하느님께서 여전히 자신들과 함께하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봉헌식의 날, 서로의 손을 맞잡고 기뻐 노래하는 그들의 모습은, 성전의 기둥보다도 더 큰 증거였습니다. 그들의 환희는 돌담이 아니라, “다시 하느님 안에 살아 있다”는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예수님께서 걸으시던 시대에, 성전은 여전히 하느님의 집으로서 사람들의 중심에 자리했지만, 예수님의 시선은 더 넓고 깊었습니다. “당신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밖에서 찾습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예수님은 뜻밖에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혈연의 끈보다, 건물의 위용보다, 말씀을 살아내는 삶이 더 본질적이라는 선언이었습니다. 그 말씀은 단절이 아니라 확장이었습니다. 살아 있는 가족, 살아 있는 성전이란 바로 말씀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자체였던 것입니다.
돌로 지은 성전은 언젠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포천에는 옛날 군인들이 세운 성당이 있습니다. 지금은 미사터로 쓰이지 못하고 유적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여전히 우리는 선인들의 믿음과 헌신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라진 건물이 아니라, 남겨진 정신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 안에서 살아가는 삶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전사랑을 택하는 순간, 용서를 건네는 순간, 작은 선의를 실천하는 그 순간마다 우리의 일상은 하느님께 봉헌되는 성이 됩니다.
성전 봉헌은 한 날의 의식이지만, 말씀을 실천하는 삶은 매일의 봉헌입니다. 바람이 흔들 수 있는 것은 흙과 돌로 쌓은 집이지, 말씀 위에 세운 마음의 집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늘 내가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고, 작은 희생을 기꺼이 받아들일 때, 그 순간은 곧 성전 봉헌식이 됩니다.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성전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내 안에서, 우리의 삶 속에서, 매일 새롭게 세워지고 있습니다. 벽돌을 쌓듯 한 걸음씩 쌓아 올린 우리의 삶이 하느님께 드려질 때, 그 안에서 우리는 참으로 살아 있는 성전, 살아가는 가족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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