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독서 말씀] 첫사랑을 기억하시는 하느님
본문
예레미야 2,1-3.7-8.12-13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해 첫사랑을 잃은 신부를 바라보시는 안타까운 마음을 담고 있는 말씀입니다. 특히 마지막의 '생수의 원천'과 '갈라진 저수 동굴'의 비유는 예레미야서 전체를 대표하는 말씀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먼저 책망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추억부터 꺼내십니다.
“네 젊은 시절의 순정과 신부 시절의 사랑을 내가 기억한다.”
광야는 사람이 살기 어려운 곳입니다.
먹을 것도, 마실 것도, 미래에 대한 보장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광야에서 하느님만 믿고 따라 나섰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믿음을 '신부 시절의 사랑'이라고 표현하십니다.
사랑은 기억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실패보다 먼저,
우리가 당신을 순수하게 사랑했던 순간을 기억하십니다.
풍요는 축복이었지만 시험이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기름진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 열매와 좋은 것을 먹게 하였다.”
그러나 풍요를 얻은 뒤 사람들은 선물을 주신 분보다
선물 자체를 더 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제들은 하느님을 찾지 않았고,
율법학자들은 하느님을 알지 못했고,
목자들은 반역했으며,
예언자들은 바알을 따랐습니다.
가난할 때는 기도했지만 풍요로워진 뒤에는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찾지 않게 된 것이 더 큰 문제였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습니다.
과학과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고,
인공지능은 수많은 답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삶의 가장 중요한 질문,
"주님께서 어디 계신가?"
를 잊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생수의 원천과 갈라진 저수 동굴
오늘 말씀의 절정은 바로 이 비유입니다.
"그들은 생수의 원천인 나를 저버렸고,
제 자신을 위해 갈라진 저수 동굴을 팠다."
샘물은 끊임없이 흘러나옵니다.
반면 저수 동굴은 빗물을 모아 두는 시설입니다.
그런데 그 저수 동굴마저 금이 가 있어 물이 모두 새어 버립니다.
하느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왜 끊임없이 솟아나는 생수를 버리고,
물을 담아 둘 수도 없는 깨진 웅덩이를 만들었느냐?"
이것이 인간의 어리석음입니다.
돈, 명예, 권력, 성공, 쾌락...
이 모든 것은 잠시 우리를 만족시키지만,
영혼의 갈증을 영원히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사람에게 물은 가장 기본적인 원료입니다.
아무리 좋은 저장 용기를 만들어도
용기에 금이 가 있으면 물은 오래 머물지 못합니다.
인간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는 풍요로워 보여도
마음속에 하느님이 계시지 않으면
기쁨도, 평화도 오래 머물지 못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채우려 하지만,
문제는 채울 것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마음이라는 그릇이 갈라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새로운 저수조를 만들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생수의 원천으로 돌아오라고 초대하십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수많은 '갈라진 저수 동굴'을 팝니다.
성취가 행복을 줄 것이라 믿고,
사람들의 인정이 만족을 줄 것이라 기대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다시 목마릅니다.
오늘 예레미야는 묻습니다.
"나는 지금 생수의 샘에서 목을 축이고 있는가,
아니면 물이 새어 나가는 갈라진 웅덩이를 붙잡고 있는가?"
하느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의 첫사랑을 기억하십니다.
그리고 조용히 말씀하십니다.
"돌아오너라. 내가 여전히 너의 생수의 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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