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독서 말씀]
본문
예수님의 이 말씀은 신앙의 핵심을 단순하면서도 깊이 있게 드러낸다.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이 한 문장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밝혀 준다.
신앙은 어떤 교리를 아는 데서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보여지는 삶’으로 완성된다.
필립보는 인간적인 갈망을 드러낸다.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눈으로 보고 확인하고 싶은 마음, 그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요청을 부드럽게 넘어서신다.
이미 보고 있으면서도 보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를 짚어 주신다.
하느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예수님의 삶과 말씀 안에서 이미 드러나 계신다는 것이다.
이 대목을 묵상하다 보면, 신앙이란 ‘찾아가는 과정’이기보다 ‘이미 와 계신 분을 알아보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자주 하느님을 멀리서 찾으려 한다. 특별한 체험이나 극적인 사건 속에서만 그분을 만나려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신다.”
하느님은 이미 우리 곁에, 아니 우리 안에 머물러 계신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은 무엇이어야 할까.
그것은 결국 ‘드러내는 삶’이다.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드러내셨듯이,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를 드러내야 한다.
말로만이 아니라, 삶의 태도와 선택, 관계 속에서 그분이 보이도록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거창한 일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주 일상적인 자리에서 시작된다.
누군가를 이해하려 애쓰는 마음,
상처를 받았을 때 용서하려는 선택,
자신의 이익보다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는 태도—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갈 때, 사람들은 우리를 통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어렴풋이 보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더 나아가 놀라운 약속을 하신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이 말씀은 단순한 격려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단순히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
그분의 삶이 이어지는 통로가 되는 존재임을 의미한다.
하느님의 일이 우리를 통해 계속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약속에는 한 가지 전제가 있다.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기도의 형식이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이다.
그런 기도는 이미 하느님의 뜻 안에 있기 때문에 이루어진다.
결국 그리스도인의 삶은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머무름, 드러냄, 그리고 신뢰이다.
먼저 우리는 주님 안에 머물러야 한다.
기도와 말씀 안에서 그분과의 관계를 깊이 해야 한다.
그 다음에는 그분을 드러내야 한다.
삶을 통해 사랑과 진리를 보여 주어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신뢰해야 한다.
우리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해 일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완전하지 않다. 때로는 흔들리고, 때로는 두려워하며, 때로는 자신을 드러내기 바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통해 일하시기를 원하신다.
마치 예수님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이루셨듯이,
우리 안에 머무르시는 주님께서도 같은 일을 이루어 가신다.
그래서 신앙은 결국 한 가지로 귀결된다.
“나는 지금 누구를 드러내며 살고 있는가?”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삶이 쌓여 갈 때, 누군가는 우리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게 될 것이다.
“저 사람을 보니,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이며,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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