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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적 인간의 기쁨과 시대의 징조를 읽는 눈

제임스
2025-10-24 08:19 1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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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성경 말씀에 대한 묵상 수필입니다

 

어린 시절, 수녀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묵주기도를 바치지 못하였다면 그날 저녁은 굶어야 한다.”
어린 마음에도 그 말씀은 매우 엄숙하게 들렸다. 그래서 어느 날은 기도를 잊은 채 밥상 앞에 앉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러자 어머니께서 물으셨다.
왜 밥을 안 먹니?”
묵주기도를 바치지 못했어요.”
그랬더니 어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선 밥을 먹고 기도를 바쳐라. 그래야 기도할 힘이 생기지 않겠니?

그날 이후 수녀님의 말씀이 다시 떠올랐다.
인간은 영혼과 육신으로 이루어져 있다. 육신만 밥을 먹으면 안 되고, 영혼도 밥을 먹어야 한다. 그 밥이 바로 기도란다.”
영혼과 육신이 균형 있게 자라야 한다는 그 말씀은 오랜 세월 내 마음속에 남았다. 얼마 전 발간한 영혼과 육신을 살리는 음식 이야기라는 책 역시 그때의 가르침에서 비롯된 셈이다.
나는 그 말씀을 떠올리며, 내 안의 영혼과 육신, 내적인 양심과 외적인 행동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를 자주 되묻게 된다.

 

오늘의 성경 말씀은 그런 나를 향한 하느님의 부드러운 일깨움처럼 다가왔다.

나의 내적 인간은 하느님의 법을 두고 기뻐합니다.” (로마 7,22)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루카 12,56)

 

바오로 사도의 고백은 인간 내면의 깊은 전장을 드러낸다.
그는 하느님의 법을 기뻐하지만, 동시에 그 법에 맞서 싸우는 또 다른 힘이 자신 안에 있음을 고백한다. 우리 모두에게도 그러한 이중성이 있다. 세속의 성공과 편안함을 쫓는 마음이 나를 끌어당기지만, 한편으로는 양심의 깊은 곳에서
이 길이 옳다.”라는 하느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목소리는 작고 미약하지만, 세상의 소음 속에서도 끈질기게 나를 부르신다.

하느님의 법을 두고 기뻐하는 내적 인간바로 그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다.
세상의 논리에 휩쓸리지 않고, 양심과 신앙의 빛을 따르려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 길은 쉽지 않다. 육체의 습관과 욕망이 끊임없이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오로는 탄식한다.
나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탄식 뒤에는 희망이 있다.
그는 안다. 진정한 기쁨은 세상의 달콤함이 아니라, 내적 인간이 하느님의 뜻과 일치될 때 온다는 것을. 그 옛날 수녀님이 말씀하신 영혼과 육신의 균형이 바로 그것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또 다른 방식으로 같은 진리를 말씀하신다.
너희는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날씨의 변화는 감각적으로 느끼면서도,
인간의 마음과 사회 속에 일어나는 징조곧 하느님이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를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의 뉴스와 유행에는 민감하지만, 영혼의 계절이 바뀌는 징조에는 너무 무심하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징조는 늘 이 아니라 에 있다.
그분은 큰소리로 명령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일상의 아주 작은 틈새에서 조용히 말씀하신다.
어느 날 문득 마음이 찔리거나,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유난히 마음에 남을 때,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신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우연이라 넘겨버리고 만다.
하늘의 구름은 읽으면서도 마음의 구름은 읽지 못하는 것이다.

 

내적 인간의 기쁨과 시대의 분별은 결국 하나로 이어진다. 내면이 하느님과 조화를 이루는 사람만이 시대의 흐름 속에서 그분의 뜻을 읽어낼 수 있다. 반대로 마음이 욕심과 불안으로 흐려져 있으면, 어떤 징조도 단지 세상의 소음처럼 들릴 뿐이다. 오늘의 말씀은 조용히 묻는다.
너는 지금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있는가?”

가을 들녘에 부는 바람은 단순한 자연의 현상이 아니라, 하느님이 주시는 영혼의 바람일 수도 있다. 나의 내적 인간이 그분의 법을 기뻐할 때, 비로소 나는 이 시대를 올바로 읽을 수 있는 눈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세상의 복잡함 속에서도 하느님의 섭리와 은총이 선명히 드러난다.

오늘 나는 다시금 다짐한다.
세상의 징조만이 아니라, 내 마음의 징조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하느님의 법을 기뻐하며, 그분의 뜻을 분별하는 내적 인간으로 살아가기를
.
그것이야말로 시대를 초월한 신앙인의 기쁨이며,
하느님께서 이 시대에 우리를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은총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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