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과 응답: 하느님의 잔치에 참여하는 길
본문
시편 40편은 신앙인의 마음 깊숙한 곳을 두드린다.
“주님, 보소서, 당신 뜻을 이루려 제가 왔나이다.”
짧은 한마디 안에 인간의 결심과 약속, 그리고 하느님을 향한 순전한 신뢰가 담겨 있다.
처음으로 영성체를 받거나 고해성사를 드린 뒤의 마음이 꼭 이렇다. 한 겹의 무거운 옷을 벗어버린 듯, 온몸이 새로워진 것 같은 가벼움이 찾아온다. 그 순간만큼은 주님 앞에 서 있는 자신이 더없이 선명하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우리는 다시 흔들리고, 변심하고, 제 욕망에 끌려가는 연약한 존재임을 깨닫는다. 바로 그때 시편의 고백이 들린다.
“행복하여라,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길 때 찾아오는 기쁨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이 고백은 마태오 복음 22장의 혼인 잔치 비유와 맞닿아 있다. 아들의 혼인 잔치를 준비한 임금은 손님들을 초대한다. 그러나 정작 초대받은 이들은 하나같이 발길을 돌린다. 사업이 바쁘다는 핑계, 자기 일에 몰두해야 한다는 이유. 결국 임금은 거리를 향해 “아무나 만나는 대로 불러오너라” 하고 명령한다. 잔치는 뜻밖의 이들,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들로 채워진다. 하느님 나라의 초대는 언제나 이렇게 열려 있다. 누구든 들어올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그 부름에 어떻게 응답하느냐 하는 것이다.
나는 그 장면을 명동 밥집 봉사에서 본 적이 있다. 무료 급식을 나누던 날,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가까운 동네 사람들만 오는 줄 알았는데, 인천에서, 성남에서, 더 멀리서까지 찾아온 이들이 있었다. 단지 한 끼의 식사를 위해 달려온 이들의 발걸음이 마음을 울렸다. 밥이란 무엇인가. 단순히 허기를 달래는 음식이 아니라, 삶을 이어가는 마지막 끈이고, 누군가 자신을 기억해준다는 위로였다. 그들은 밥보다도, 자신들을 잊지 않은 따뜻한 마음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 순간, 나는 이들이야말로 하느님 잔치에 초대된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또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더위와 추위를 견디며 땀 흘려 음식을 나르던 봉사자들의 손길이었다. 힘든 줄 알면서도 묵묵히 웃음을 지으며 밥을 건네는 그 모습은 마치 혼인 예복을 차려입은 사람들처럼 보였다. 값비싼 옷이 아니라, 헌신과 사랑의 행위가 그들을 잔치에 합당한 사람으로 빛나게 하고 있었다.
오늘의 말씀은 우리에게 다시 묻는다. 하느님의 은총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우리는 그 초대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초대장은 손에 들고 있으면서도, 정작 잔치에는 들어가지 못한 사람처럼 살고 있지는 않은가? 바쁘다는 이유로 기도를 미루고, 편안함을 핑계로 봉사를 외면하며, 양심의 소리를 뒷전으로 미루는 일은 없는가? 그렇게 살다 보면 은총의 자리를 놓치기에 십상이다.
그러나 시편의 목소리는 우리를 다시 불러낸다.
“주님, 보소서, 당신 뜻을 이루려 제가 왔나이다.”
하느님의 뜻을 따른다는 것은 특별한 순간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작은 일상에서 조금씩 쌓여 가는 선택이다. 가정에서 존중의 말을 건네는 일, 직장에서 정직을 지키는 일, 사회에서 약한 이를 향해 손을 내미는 일. 이런 평범한 선택들이 모여 우리를 잔치의 예복으로 단장시킨다.
하느님은 오늘도 우리를 잔치로 부르신다. 그 잔치는 멀리 있지 않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 속에 이미 차려져 있다. 초대의 편지가 내 손에 들려 있다면, 이제는 응답할 차례다. 신앙은 단순히 “믿는다”라는 말에 머물지 않는다. 믿음을 삶으로 드러낼 때, 우리는 초대받은 이들 가운데서 선택된 이들로 변화한다.
그래서 신앙인은 날마다 이렇게 속삭일 수 있어야 한다.
“주님, 오늘도 제 삶의 모든 자리에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제가 당신의 초대에 합당하게 응답하여, 당신의 잔치 안에서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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