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 말씀] 하느님께 온전히 의지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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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제자들의 파견은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이라기보다
하느님에 대한 의존을 배우게 하는 훈련에 가깝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가장 준비된 상태가 아니라
가장 비어 있는 상태로 세상에 내보내신다.
지팡이 하나면 충분하다고.
빵도, 보따리도, 돈도, 여벌 옷도 금하신다.
이것은 단순한 금욕 규칙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탱할 장치를 최소화하라는 요청이다.
다시 말해, “너희가 의지할 것은 너희 자신도, 소유도 아니라
오직 나와 너희가 만날 사람들이다”라는 선언이다.
사람은 풍족할 때보다 부족할 때 훨씬 더 진실해진다.
가진 것이 많을 때는 계산이 앞서고,
선택지가 넓을수록 책임은 흐려진다.
그러나 빵이 없고, 여벌이 없고, 돌아갈 안전한 거처가 없을 때는
매 순간이 결단이 된다. 그때 비로소 한 걸음 한 걸음이
기도가 되고, 만나는 사람 하나하나가 은총의 통로가 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그렇게 파견하신 이유는,
그들이 고난을 겪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아니라
‘살아내는 사람’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부족함 속에서는 말보다 태도가 먼저 드러나고,
설교보다 관계가 앞서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준비가 다 되면
하느님을 위해 무언가를 하겠다고 말한다.
시간이 생기면, 형편이 나아지면, 마음이 안정되면 말이다.
그러나 복음은 정반대의 방향을 가리킨다.
가장 흔들릴 때, 가장 여유가 없을 때, 바로 그 자리에서 파견이 시작된다.
실제로 우리도 그렇다.
평소에는 하느님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다가도,
병이 들거나, 실패를 겪거나, 삶이 무너지는 순간에
비로소 하느님을 찾는다.
그때의 기도는 정제되지 않았지만 절실하고,
문장은 서툴지만 진실하다.
예수님은 바로 그런 상태의 사람들을 통해
복음이 전해질 수 있다고 믿으신 듯하다.
상처를 겪은 사람이야말로 회개의 의미를 알고,
의지해 본 사람이야말로 의지하도록 초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 눈여겨볼 대목은, 제자들을 둘씩 파견하셨다는 점이다.
완전하지 않은 두 사람이
서로의 부족함을 감싸며 걷도록 하신 것이다.
이는 사명이 개인의 영웅담이 아니라,
함께 버티고 함께 실패하고 함께 다시 일어나는 여정임을 보여준다.
신앙은 혼자 완주하는 경주가 아니라,
서로의 숨을 확인하며 걷는 순례다.
그리고 받아들여지지 않는 곳에서는 먼지를 털고 떠나라고 하신다.
상처를 붙들고 증명하려 애쓰지 말라는 뜻이다.
복음은 강요로 설득되는 것이 아니라,
열려 있는 자리에서만 뿌리를 내린다.
떠날 줄 아는 용기 또한 신앙의 한 부분이다.
결국 이 파견 장면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하느님 나라의 일은 완벽한 준비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비어 있을 때,
가장 의지할 곳이 없을 때,
그때 비로소 하느님께 온전히 기대게 되고,
그 기대 위에서 복음은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 파견은 부족함을 피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부족함을 통과하라는 부르심이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제자들은 단지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복음이 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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