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 말씀] 마음이 가난해질 때
본문
사람은 늘 가난하지 않다.
대부분의 날, 우리는 스스로를 지탱할 만큼의 이유와 근거를 가지고 살아간다.
경험과 능력,
관계와 책임,
그리고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다”는 조심스러운 자기 확신이
우리 마음의 기둥이 되어 준다.
그러나 삶은 그 기둥들을 하나씩 흔든다.
애써 준비했지만 결과가 따라주지 않았을 때,
오랫동안 붙잡고 있던 사람이나 자리가 갑자기 사라졌을 때,
앞날이 보이지 않아 기도조차 말문이 막힐 때,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을 더 이상 부인할 수 없게 되었을 때,
혹은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 아무리 말해도 닿지 않는 벽을 느낄 때.
그 순간, 마음은 쉽게 가난해진다.
무언가 크게 잘못된 것처럼 느껴지고,
그동안 의지하던 것들이 더 이상 나를 지탱해 주지 못한다는 사실이 선명해진다.
마음 한가운데가 텅 비어 잠시 어디에 발을 디뎌야 할지 알 수 없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런 사람들을 향해 말씀하신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이 말씀은 가난을 미화하거나 고통을 권하는 선언이 아니다.
오히려 삶을 살다 보면 누구나 맞닥뜨리게 되는
그 ‘비어 있음의 순간’을 외면하지 말고 바라보라는 초대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 가난해졌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때 내가 어디에 기대는가이다.
실패했을 때, 나는 다시 성공하면 괜찮아질 것이라며 나 자신을 몰아붙이는가.
아니면 아무 성과가 없어도 하느님 앞에 설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가.
상실했을 때, 나는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붙잡고 그 자리에 머무는가.
아니면 비어 버린 자리를 하느님께 조심스럽게 내어 드리는가.
두려움 앞에서, 나는 걱정과 계산으로 마음을 가득 채우는가.
아니면 두려움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하느님께 가져가는가.
노화 앞에서, 나는 여전히 쓸모 있음을 증명하려 애쓰는가.
아니면 이제는 존재 자체로 사랑받고 있음을 믿으려 하는가.
관계가 흔들릴 때, 나는 상대를 바꾸려 애쓰는가.
아니면 이해받지 못해도 미움 없이 서 있으려 노력하는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붙잡고 있던 것들이 자신을 완전히 지탱해 주지 못함을 정직하게 인정한 사람이다.
그래서 마음이 가난해지는 순간은 신앙 안에서는 끝이 아니라 문턱이 된다.
내 힘으로 버티던 자리에서 내려와,
하느님께 기대는 법을 다시 배우는 자리다.
행복은 모든 것이 잘 풀릴 때 뒤늦게 주어지는 보상이 아니다.
무너진 자리에서도 “그래도 주님은 내곁에 계셔 주신다”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그때 조용히 시작된다.
마음이 가난해지는 그 순간, 우리는 비로소 묻게 된다.
“주님, 제가 여기서도 당신께 기대어도 되겠습니까?”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크게 설명하지 않으신다.
다만 우리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조용히 대답하신다.
“그래,바로 그 자리가 네가 나를 만나는 자리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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