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독서 말씀] 주님 안에서 자랑하라
본문
우리가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돌아보면 지혜롭다고 불릴 만한 사람도,
유력하다고 손꼽힐 사람도,
가문이 좋다고 자랑할 사람도 많지 않았다.
바오로 사도의 이 고백은 겸손의 권고이기 이전에 하느님 방식의 선언이다.
하느님께서는 처음부터
‘괜찮아 보이는 사람들’을 모아 교회를 세우지 않으셨다.
오히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어리석고, 약하고, 비천해 보이는 이들을 선택하셨다.
왜 그랬을까.
“그리하여 어떠한 인간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셨다.”
이 문장은 송덕비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어느 고을에 송덕비가 세워졌고, 비석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었다.
“오늘 이 도둑놈을 보내노라.”
사람들은 웃었고, 현감은 껄껄 웃으며
“내일 또 다른 도둑이 올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그 뒤로 아전과 행인이 한 줄씩 보태며 마침내 비석은 이렇게 끝난다.
“세상이 온통 도둑뿐이다.”
처음에는 통쾌한 풍자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비석에는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비웃는 사람은 많은데, 서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가 도둑을 말하지만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사람은 없다.
바오로 사도가 말한 “지혜로운 자, 강한 자, 있는 자”는
단지 사회적 지위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스스로를 자랑할 근거를 가진 사람의 태도를 말한다.
나는 저들보다 낫다.
나는 옳은 편에 서 있다.
나는 최소한 저 사람만큼은 아니다.
이 자랑은 교묘하다.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하면서도
하느님 없이도 괜찮다는 착각에 머무르게 한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약한 것을,
있는 것을 무력하게 하시려고 없는 것을 선택하신다.
그 선택은 사람을 낮추기 위함이 아니라,
자랑의 방향을 바꾸기 위함이다.
“자랑하려는 자는 주님 안에서 자랑하라.”
이 말은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바오로는 자랑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본성을 정확히 안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자랑하고 싶거든, 너 자신을 자랑하지 말고 그리스도를 자랑하라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지혜가 되시고, 의로움이 되시고,
거룩함과 속량이 되신다.
곧, 우리가 내세우고 싶어 하는 모든 것을
이미 대신 살아 주신 분이시다.
송덕비에 새겨진 문장들이 점점 독해질수록 우리는 웃지만,
신앙은 그 웃음을 멈추게 한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비석을 읽는 행인인가,
한 줄을 더 보태는 아전인가,
아니면 그 비석 앞에서 침묵 속에 서 있는 사람인가.
하느님께서는 도둑을 색출하는 데 관심이 있으신 분이 아니다.
대신 자랑할 수 없는 자리에서도 그분을 의지하는 사람을 찾으신다.
그래서 교회는 강한 사람들의 전당이 아니라,
자랑을 내려놓은 사람들이 주님 안에서 다시 살아나는 자리다.
오늘 우리가 남길 비문은 돌 위의 글자가 아니라 삶의 방향일 것이다.
자랑하려는 자는 주님 안에서 자랑하라.
그분만이 우리의 이름이 되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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