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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복음말씀] 그분을 알아보는 순간

제임스
2026-01-30 23:12 165 0
  • - 첨부파일 : 1011.jpg (74.3K) - 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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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동창들과 12일 일정으로 안동의 여러 유적지를 돌고

밤늦도록 추억을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인 적이 있다.

오랜만에 마음을 놓고 웃을 수 있었던, 참으로 기분 좋은 시간이었다.

이튿날 아침, 서울로 향하려던 길에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와이퍼를 최대한 빠르게 움직였지만,

억수같은 빗줄기에 앞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저 앞차의 희미한 불빛만을 의지해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달리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앞차에 사고가 나지 않기만을 바랐다.

운전대 앞에 걸린 십자가를 힐끗 바라보며,

집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그 길을 버텼다.
제자들이 풍랑에 흔들리던 순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처지였다.

 

그날 저녁,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

하루의 소란을 접고, 익숙한 해안을 떠나 미지의 쪽으로 향하자는 초대다.

신앙의 여정은 늘 이렇게 시작된다.

안전한 자리를 벗어나, 보이지 않는 방향으로 노를 젓는 일.

우리는 배에 오르는 순간부터 이미 믿음을 선택한 셈이다.

그러나 호수 한가운데서 바람은 돌변한다.

물결은 배 안으로 들이치고, 계산과 경험으로 지탱되던 마음은 금세 무너진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주무신다.

이 장면은 신앙인에게 때로 가장 불편한 대목이다.

우리의 기도가 급해질수록,

하느님은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이는 신앙인의 가장 솔직한 고백이다.

믿음은 늘 평온한 확신만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위기 속에서 터져 나오는 질문과 함께 자란다.

예수님께서 깨어나 바람을 꾸짖으시자 고요가 찾아온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다음 말씀이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이 말씀은 폭풍이 사라졌기 때문에 던져진 말씀이 아니다.

폭풍 한가운데서조차 관계를 신뢰하라는 초대다.

믿음은 상황이 잔잔해졌음 때문이 아니라,

동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붙드는 태도다.

배가 흔들릴 때 우리가 잃는 것은 노가 아니라 중심이다.

예수님께서는 자연을 잠재우시기 전에, 제자들의 중심을 먼저 묻고 계신다.


마지막에 남는 두려움은 또 다른 질문으로 바뀐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신앙은 해답을 소유하는 일이 아니라,

질문을 더 깊게 품는 길이다.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 분 앞에서 제자들은 안도의 한숨 대신 경외를 배운다.

문제의 해결보다 인격의 현존이 더 크다는 깨달음,

그것이 이 이야기의 결론이다.

 

우리의 삶에도 칠흑같은 어둠의 저녁은 찾아온다.
하루의 끝자락에서 건너가자는 부르심이 들리고,

예상치 못한 돌풍이 우리의 삶을 덮칠 것이다.

그때 우리는 예수님을 흔들어 깨울 것인가,

아니면 흔들리는 마음을 내려놓을 것인가.

기적은 폭풍이 멎는 순간보다,
폭풍 속에서도 함께 계신 분을 알아보는 순간에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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