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독서 말씀] 다윗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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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유학을 가서 처음 맞이한 크리스마스때
교포들 앞에서 성극을 하나 보여드린다고 하고는
배고푼 사람에게 가진 식빵을,
추위에 떠는 사람에게 웃옷을 벗어 주고,
바지가 없어 떠는 사람에게 바지를 벗어 주었던
그리고는 팬티 바람에 노래를 부르며
교포들을 웃기고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선물했던 기억이 난다.
오늘의 독서에 나오는 다윗의 춤과는 대조적인 모습이 교차된다.
이는 단순한 역사적 행렬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 인간의 태도가 어디까지 낮아질 수 있는가를
보여 주는 고백의 순간으로 읽힌다.
다윗은 왕이었다.
질서와 체면, 위엄을 가장 잘 지켜야 할 자리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주님의 궤 앞에서 그는 왕의 입자를 벗어 던진다.
아마포 에폿은 제의자의 옷이지만, 동시에 가장 소박한 옷이다.
그는 자신의 지위와 명예를 포장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해 춤을 춘다.
신앙인의 눈에 이 춤은 흥겨운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 자기를 비워 내는 몸의 기도다.
여섯 걸음마다 바쳐지는 제물은 속도를 늦춘다.
신앙은 언제나 빠른 성취보다 멈춤과 확인의 리듬을 요구한다.
다윗은 궤를 목적지로 옮기는 데에만 몰두하지 않는다.
매 여섯 걸음마다 “지금도 여전히 주님 앞에 서 있는가”를 몸으로 확인한다.
신앙인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결과를 향해 달리다 보면 하느님은 수단이 되기 쉽지만,
걸음을 멈추는 순간 하느님은 다시 목적이 된다.
제사가 끝난 뒤의 장면은 더욱 결정적이다.
다윗은 축복을 독점하지 않는다.
그는 빵과 과자, 말린 열매를 남녀를 가리지 않고 나눈다.
이는 단순한 잔치가 아니라 신앙의 구조를 드러내는 행위다.
하느님 앞에서의 기쁨은 언제나 공유될 때 완성된다.
신앙인의 기쁨은 혼자 품는 감정이 아니라,
타인의 식탁으로 흘러가야 할 은총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나누었는가보다
어떤 순서로 나누었는가다.
다윗은 먼저 주님께 바치고, 그다음 백성에게 나눈다.
하느님을 건너뛴 나눔은 쉽게 자기만족이 되지만,
하느님을 통과한 나눔은 공동체를 살린다.
신앙인의 입장에서 보면, 제단과 식탁은 분리되지 않는다.
제단에서 시작된 은총은 반드시 식탁 위로 내려와야 한다.
이 말씀은 오늘의 신앙인에게 묻는다.
나는 여전히 체면을 입고 하느님 앞에 서 있는가,
아니면 아마포 에폿으로 충분히 낮아질 수 있는가.
나는 은총을 경험하는 사람에 머무르는가,
아니면 그것을 나누는 사람으로 살아가는가.
다윗의 춤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였다.
그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왕국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 기뻐할 줄 아는 인간의 자세였다.
신앙은 바로 그 입자로부터 다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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