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날 복음말씀] 빛은 가장 중심의 위치보단 변두리에서 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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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한이 잡혔다는 소식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로 물러가신다.
이 장면을 처음 읽을 때면 나는 ‘물러가심’이라는 단어 앞에서 잠시 멈추게 된다.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이는 후퇴처럼 보인다.
정의를 외치던 예언자가 감옥에 갇히고,
그 뒤를 잇는 이는 한걸음 물러서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복음은 이 물러가심을 실패로 기록하지 않고,
오히려 여기서부터 예수님의 길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갈릴래아는 여러 면에서 중심적인 곳이 아니다.
종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도 변두리였다.
이방인의 피가 섞여 있는 곳이고,
사람들은 그곳을 ‘순수하지 못한 땅’이라 불렀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곳을 피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나자렛을 떠나, 즈불룬과 납탈리 땅,
호숫가의 작은 도시 카파르나움에 자리를 잡으신다.
빛은 언제나 중심 부분에서 시작될 것 같지만,
하느님의 빛은 늘 어둠이 짙은 변두리에서 먼저 켜진다.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이 말은 과거의 예언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 쓰이고 있는 문장처럼 들린다.
삶이 복잡해지고, 방향을 잃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우리는 흔히 스스로를 아웃사이더처럼 ‘변두리’에 있다고 느낀다.
그러나 복음은 바로 그 자리가 빛이 시작되는 자리라고.
예수님의 첫 선포는 단순하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는 자책하는 것이 아니다.
잘못을 헤아리며 자신을 몰아붙이라는 말도 아니다.
회개란 방향(생각)을 바꾸라는 초대다.
하느님 없는 생각 속에서 살아오던 삶의 방향을,
하느님이 계신 쪽으로 조금 방향을 틀라는 부르심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단 하나다.
하늘 나라가 이미 가까이 왔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준비해서 하늘나라가 오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가 먼저 다가왔기에 우리가 바뀔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길에서 예수님은 어부들을 부르신다.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던 사람들,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던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세상을 바꿀 계획도,
위대한 이상도 품고 있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다만 하루의 생계를 책임지는 손과 몸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세상의 중심 위치에 있는 학식이 있는 엘리트들이 아니다.
변방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예수님은 그들의 삶을 부정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언어로 말씀하신다.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
새로운 삶은 낯선 세계로의 도피가 아니라,
지금의 삶이 하느님 안에서 새 의미를 얻는 일임을 보여 주신다.
그들이 “곧바로” 따랐다는 말은 충동처럼 보이지만,
나는 이 말 속에서 오래 쌓여 있던 갈증을 본다.
더는 이대로는 살 수 없다는 침묵의 질문들,
그 질문에 정확히 닿는 한마디의 부르심.
믿음이란 준비가 완벽해진 뒤의 선택이 아니라,
하느님을 신뢰하기로 결단하는 순간의 용기인지도 모른다.
예수님은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고,
선포하시고, 고쳐 주신다.
말씀은 머리에만 머물지 않고, 몸과 삶을 치유한다.
하느님 나라는 설명이 아니라 사건으로 다가온다.
병든 이가 일어나고, 허약한 이가 다시 숨을 고를 때,
사람들은 비로소 하느님 나라가 무엇인지 알아본다.
오늘의 말씀은 현대에 사는 우리들에게도 묻는다.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중심에서 절대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지 않은가.
변두리의 사람들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가.
혹은 어둠 속에 앉아 있으면서도,
빛이 이미 다가왔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예수님은 오늘도 갈릴래아를 지나신다.
우리 삶의 가장 평범한 자리, 가장 지친 자리에서 조용히 말씀하신다.
“나를 따라오너라.”
그 부르심은 여전히, 지금 여기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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