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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의 고통을 바라보며]

제임스
7시간 7분전 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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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성인에 이어 오상의 비오 신부님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문득
한 인간이 그리스도의 오상에 담긴 고통을 몸으로 감당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일인가
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분들이 겪은 고통을 생각하다 보면 오히려 우리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예수님의 십자가로 향합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너무 자주 바라보기 때문에 때로는 그 고통에 익숙해져 버린 것은 아닐까요.
성당에 들어설 때마다 십자가를 보고,
기도할 때마다 주님의 수난을 말하지만,
정작 그분께서 흘리신 피와 땀,
못에 찔린 손과 발,
창에 찔린 옆구리의 고통을
얼마나 깊이 마음에 새기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구원하시기 위해 고통을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은 단순히 육체적인 아픔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인간이 하느님에게서 멀어져 가는 모습을 바라보아야 하는
사랑의 아픔이 그 안에 함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삶도 십자가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욕심 때문에 누군가를 아프게 하고, 미움 때문에 사람을 밀어내며, 

잘못인 줄 알면서도 하느님에게서 멀어질 때, 

그것은 어쩌면 주님의 상처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주님께서 역사적으로 다시 십자가의 육체적 고통을 겪으신다는 뜻이라기보다, 

십자가에서 드러난 그 사랑을 내가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묻게 됩니다.


프란치스코 성인과 오상의 비오 신부님의 오상은 그래서 신비한 현상 자체보다 

더 깊은 곳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오상은 상처를 자랑하는 표지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에 얼마나 깊이 참여할 수 있는가를 묻는 표지일 것입니다.

오늘 축일을 맞아 다시 오상의 신비를 바라봅니다.

주님께서 받으신 상처를 바라보며
내가 다른 사람에게 남긴 상처를 생각하고,
주님께서 감내하신 고통을 바라보며
내가 피하려 했던 사랑의 수고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십자가 앞에서 조용히 묻습니다.

“주님, 당신의 상처를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오늘 제 삶으로 그 사랑에 응답하려면
저는 무엇을 바꾸어야 하겠습니까?”

어쩌면 오상의 신비를 묵상한다는 것은 상처의 크기를 헤아리는 일이 아니라, 

그 상처보다 더 컸던 사랑의 크기를 깨닫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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