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9.17)의 독서 말씀]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 코린토 1서 (15,1-11) > 자유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자유게시판

[오늘(9.17)의 독서 말씀]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 코린토 1서 (15,1-11)

제임스
2026-09-17 17:25 19 0

본문


오랜만에 젊은 시절의 사진 속 옛 얼굴을 보면 참 많은 생각이 든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를 상상이나 했을까.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지,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갈지,
어떤 기쁨과 실패를 경험할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수십 년을 지나 지금의 내가 되었다.

.
오늘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아주 짧은 한마디를 남긴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지금의 내가 되었습니다.”

참으로 깊은 고백이며, 바오로는 자신의 과거를 감추지 않는다.

그는 한때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자신을 사도들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자”,

심지어 사도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는 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과거의 잘못 속에 주저앉아 있지도 않는다.

과거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 사이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바라본다.

그것을 그는 은총이라고 부른다.

생각해 보면 지금의 나 역시 내 힘만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물론 열심히 공부했고 일했으며 수많은 선택을 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지금의 나를 모두 설명할 수 있을까.

나를 낳고 길러 주신 부모님이 있었고, 가르쳐 주신 스승들이 있었다.

삶의 길에서 만난 동료와 친구들이 있었고, 어려울 때 곁을 지켜 준 가족도 있었다.

우연처럼 찾아온 기회도 있었고, 당시에는 실패라고 생각했지만

지나고 보니 오히려 다른 길을 열어 준 일도 있었다.

내가 계획하지 않았는데도 내 삶을 바꾸어 놓은 만남도 있었다.

그 모든 것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내가 이루었다라는 말보다

나는 참 많이 받았다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바오로의 고백은 계속된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총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들 가운데 누구보다도 애를 많이 썼습니다.” 이 대목도 마음에 남는다.

은총을 받았다고 가만히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

여기에서 은총과 노력의 관계를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때때로 일이 잘되면 내가 열심히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반대로 신앙 안에서는 모든 것을 하느님께서 해 주셨다고 말한다.

그러나 바오로는 둘을 나누지 않는다.

은총은 씨앗과 같고 노력은 그것을 가꾸는 손길과 같다.

아무리 좋은 씨앗을 받아도 땅에 심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반대로 아무리 열심히 밭을 갈아도 씨앗과 햇빛과 비를 내가 만들어 낼 수는 없다.

 

삶도 그런 것이 아닐까.

재능은 받을 수 있지만 그것을 갈고닦는 것은 나의 몫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선물일 수 있지만

그 관계를 소중히 지키는 것은 나의 몫이다.

기회가 찾아오는 것은 은총일 수 있지만

그 기회를 붙잡고 최선을 다하는 것은 나의 몫이다.

그래서 바오로는 누구보다 애를 많이 썼다고 말하면서도 곧바로 덧붙인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있는 하느님의 은총이 한 것입니다.”

자신의 노력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자랑으로 만들지 않는다.

이것이 참된 겸손인지도 모른다.

겸손은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노력한 것은 인정하되

그 노력을 가능하게 해 준 수많은 도움과 은총까지 기억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지난 삶을 돌아보면 잘한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판단도 있었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일도 있었을 것이다.

다시 돌아간다면 다르게 하고 싶은 일도 있다.

그러나 바오로의 삶을 보면서 위로를 받는다.

과거가 잘못되었다고 해서 앞으로의 삶까지 잘못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과거의 의미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바오로는 교회를 박해했던 과거를 지울 수 없었다.

그러나 그 과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이 얼마나 큰 은총을 받았는지를

더 깊이 깨달았고, 남은 삶을 더욱 치열하게 살아갔다.

우리의 인생에서 실패도, 실수도, 아픔도 내 삶에서 지워 버릴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을 딛고 더 나은 사람이 된다면

상처까지도 내 삶을 깊게 만드는 일부가 될 수 있다.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과 얼마나 많은 은총이 있었는가. 묵상하며

내 힘으로 이루었다고 생각했던 것 가운데 정말 나 혼자 이루어 낸 것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받은 것들을 헛되게 하지 않고 살아왔는가.

앞으로 무엇을 더 얻을 것인가보다 이제는 다른 질문을 해 보고 싶다.

내가 받은 것을 어떻게 돌려줄 것인가.

배운 것이 있다면 나누고, 경험이 있다면 전해 주며,

사랑을 받았다면 누군가에게 다시 사랑으로 돌려주는 것이다.

언젠가 삶을 돌아보며 나도 바오로처럼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지금의 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마디를 더 보탤 수 있었으면 한다.

많이 받았기에 감사했고, 받은 것을 헛되게 하지 않으려고 나도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은총에 대한 가장 좋은 감사가 아닐까.

댓글목록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가톨릭출판사 천주교서울대교구 cpbc플러스 갤러리1898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굿뉴스 가톨릭대학교 가톨릭신문
게시판 전체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