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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9.13)의 제1독서]용서는 그 사람을 위한 것만이 아니다 : 집회서 (27,30―28,7)

제임스
2026-09-12 22:14 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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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있었던 일인데도 생각만 하면 다시 화가 나는 일이 있다.

상대방은 이미 잊었을텐데 나는 그때 들었던 말과 표정까지 기억한다.
그 장면을 다시 회상하며, 그때 하지 못했던 말까지 혼자 되풀이한다.

이상한 일이다. 상처를 준 사람은 내 앞에 없는데

그 사람이 남긴 분노는 여전히 내 안에서 살아 있다.

 

분노와 진노 역시 혐오스러운 것인데도 죄지은 사람은 이것들을 지니고 있다.”

집회서의 지니고 있다는 표현이 마음에 걸린다.

분노도 우리가 가지고 다니는 짐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으면 처음에는 당연히 화가 난다.

억울하기도 하고 상대방이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그 분노를 하루, 한 달, 몇 년씩 마음속에 가지고 다니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그 사람보다 내가 그 분노의 무게를 더 오래 짊어지게 된다.

그래서 용서는 상대방의 잘못을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잘못을 잘했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부당한 일을 무조건 참으라는 뜻도 아니다.

용서는 오히려 그 사람이 내 마음을 계속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이.

 

인간이 인간에게 화를 품고서 주님께 치유를 구할 수 있겠느냐?”

나는 용서받고 싶어 하면서 다른 사람은 용서하지 못한다.

내 실수에는 사정이 있었다고 설명하면서

다른 사람의 실수에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내가 잘못했을 때는 그럴 수도 있지라고 이해받고 싶으면서

누군가 나에게 잘못하면 오래 기억한다. 참으로 모순된 모습이다.

그러나 용서가 어렵다는 것도 사실이다.

용서해야지.” 마음먹는다고 해서 상처가 곧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상처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어떤 일은 다시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용서는 한 번의 결심이라기보다 반복해서 내려놓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오늘 내려놓았다가 내일 다시 화가 나면 또 내려놓는 것이다.

그러면서 조금씩 그 사람에게 빼앗겼던 내 마음의 자리를 되찾아 오는 것이다.

 

종말을 생각하고 적개심을 버려라.”

나이가 들수록 이 말씀이 더욱 현실적으로 들린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무한하지 않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기 때문이다.

앞으로 살아갈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귀한 시간을 누군가를 미워하는 데 사용한다면 너무 아깝지 않은가.

십 년 전의 한마디 때문에 오늘까지 마음이 불편하고,

오래전의 서운함 때문에 만나야 할 사람을 피하며 살아간다면

결국 잃어버리는 것은 나의 오늘이다.

 

미움은 과거의 사건이 오늘의 시간을 계속 빼앗아 가도록 허락하는 일이.

물론 모든 관계를 예전처럼 회복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거리를 두어야 할 사람도 있고,

다시는 같은 상처를 받지 않도록 경계를 세워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거리를 두는 것과 미워하는 것은 다르다.

그 사람과 다시 가까워지지 않더라도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벌을 주며 살아갈 필요는 없다.

용서는 관계의 회복보다 먼저 내 마음의 자유를 회복하는 일일 수 있다.

 

나는 아직도 누구를 마음속에서 붙잡고 있는가? 집회서는 나에게 물어본다.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 한마디를 아직도

되새기고 있지는 않은가.

이미 지나간 일을 마음속에서 계속 재판하며 상대방에게 벌을 주고 있지는 않은가.

그 과정에서 정작 나 자신까지 함께 벌주고 있지는 않은가.

삶의 마지막에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재산도 내려놓고, 명예도 내려놓고, 사랑하는 사람들과도 결국 헤어진다.

그런데 굳이 미움과 원망까지 마지막 순간까지 들고 갈 필요가 있을까.

종말을 생각하고 적개심을 버려라.”

 

용서는 상대방이 용서받을 만해서 하는 것만은 아니다.

내가 더 이상 미움에 붙잡혀 살지 않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상대방의 잘못은 기억하더라도 그 잘못이 내 남은 삶까지 지배하게 하지는 않는 것.

용서는 그 사람을 풀어 주는 일이면서, 어쩌면 나 자신을 풀어 주는 일이기도 하다.

남아 있는 삶속에서 미움보다 사랑을, 원망보다 감사를 더 많이 담으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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