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9.10)의 독서 말씀] 옳은 것보다 더 중요한 것 : 코린토 1서 (8,1-7.11-13)
본문
공부를 오래 하다 보면 아는 것이 많아진다.
처음엔 새로운 것을 하나 알아가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고 감사하다.
지식이 쌓이고 어느 분야의 전문가라는 말을 듣기 시작하면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다른 사람의 말에서 틀린 부분이 먼저 보이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답답해진다.
‘그것도 모르나?’
나도 모르게 이런 마음이 생긴다.
바오로 사도는 아주 짧지만 날카로운 말씀을 한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성장하게 합니다.”
지식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는 지식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해 왔지만,
지식에는 한 가지 위험한 면이 있다.
‘나는 알고 있다’는 생각이 어느 순간 ‘그러므로 내가 옳다’는 확신으로 바뀐다.
그래서 바오로는 이 부분에 대해 말한다.
“자기가 무엇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아직 알지 못합니다.”
한 분야를 깊이 들여다보면 알게 되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어제까지 옳다고 생각했던 이론도 새로운 연구 결과에 따라 수정된다.
진정한 지식은 ‘나는 안다’는 자신감만 키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것도 많다’는 겸손까지 가르쳐 주어야 하는 것 같다.
코린토 공동체의 문제는 우상에게 바쳤던 고기를 먹어도 되는가였다.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느님은 한 분뿐이다.
그러니 우상에게 바쳤던 고기를 먹는 것이 무슨 문제인가.’
논리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바오로는 그들에게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옳다는 것은 알겠는데,
당신의 그 옳음 때문에 상처받는 사람은 없는가?”
당시에는 아직 우상숭배의 기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우상에게 바쳤던 고기를 먹는 일은 단순한 음식 문제가 아니었다.
신앙적으로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자신의 자유만 주장하면,
믿음이 약한 사람의 양심에 상처를 줄 수 있었다.
그래서 바오로는 놀라운 결론을 내린다.
“음식이 내 형제를 죄짓게 한다면,
나는 차라리 고기를 영영 먹지 않겠습니다.”
자신이 옳다는 것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옳음을 주장할 권리보다 한 사람을 지키는 일을 더 중요하게 선택한 것이다.
우리 삶에서도 이런 일이 많다.
가정에서 부부가 다툴 때 서로 자신이 옳다고 주장한다.
부모는 경험이 많다는 이유로 자녀에게 “내가 살아 봐서 안다.”고 말한다.
직장에서도 전문가가 비전문가의 의견을 쉽게 무시할 수 있다.
그런데 관계가 깨지는 이유는 누가 옳고 그른지를 몰라서가 아니라,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 상대방의 마음보다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지식과 경험이 많아질수록 조심해야 한다.
많이 아는 사람의 한마디는 힘이 있다.
그 말은 누군가에게 길을 보여 줄 수도 있으나,
반대로 사람을 주눅 들게 만들 수도 있다.
스승이 학생에게 정답을 가르쳐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생이 질문할 용기를 잃지 않도록 해 주는 것은 더 중요하다.
내가 백 가지를 알아도 상대방이 한 가지를 모른다는 이유로 그를 낮춰 본다면,
그 지식은 사람을 성장시키는 지식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바오로는 지식과 사랑을 대립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지식 위에 사랑을 올려놓으라고 하는 것 같다.
지식은 ‘무엇이 옳은가’를 알려 주지만,
사랑은 ‘그 옳음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를 알려 준다.
지식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알려 주지만,
사랑은 때로 할 수 있어도 하지 않는 절제를 가르쳐 준다.
나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지식을 사용하는가,
아니면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지식을 사용하는가?
나이가 들수록 지식과 경험은 쌓여 가나,
그만큼 다른 사람의 말을 더 잘 듣고, 모르는 사람을 기다려 주며,
때로는 내가 가진 권리까지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많이 아는 사람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아는 것으로 다른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되는 것은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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