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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복음 말씀] 부스러기 빵과 같은 낮은 자세

제임스
2026-02-11 21:17 16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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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티로 지방으로 가셨다.

이곳은 유다인의 땅이 아닌 이방인의 지역이었다.

그곳의 어떤 집에 들어가시며 아무에게도 알려지기를 바라지 않으셨지만,

결국 숨어 있는 스승을 찾아내고야 만다.

 

더러운 영이 들린 딸을 둔 한 여인이 그분을 찾아왔다.
그녀는 시리아 페니키아 출신의 이교도였다.
종교적으로도, 민족적으로도, 경계 밖에 서 있는 사람.
그러나 어머니의 마음은 경계를 모른다.
그녀는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렸다.
체면도, 자격도, 거리도 내려놓은 자리였다.

 

예수님의 첫 말씀은 당혹스럽다.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이 말씀은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을 차별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실은 구원의 역사적 질서를 드러내는 표현이다.
약속은 먼저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다는 맥락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기서 멈추지 않으신다.
대화를 여신다. 믿음을 드러낼 공간을 마련하신다.

여인은 물러서지 않는다.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그녀의 대답에는 자존심의 상처도, 반항도 없다.
대신 겸손과 신뢰가 있다.
큰 몫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신앙은 큰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겸손히 기다리는 자리에서 완성된다.

다만 부스러기라도 충분하다고 고백한다.

은총의 한 조각이면 자신의 딸에게는 충분하다는 믿음이다.

예수님께서는 즉시 말씀하신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가 보아라. 마귀가 이미 네 딸에게서 나갔다.”

 

기적은 그 자리에서 보이지 않았다.

여인은 아무 증거 없이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믿음은 눈앞의 확인이 아니라,

약속에 대한 신뢰 위에서 걸어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가 보니 아이는 침상에 평안히 누워 있었고,

더러운 영은 떠나 있었다.

 

이 이야기는 먼저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을 보여준다.

구원은 울타리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우리가 안이라고 여기는 자리에서 오히려 믿음이 약해질 수 있고,

바깥이라 불리던 자리에서 더 깊은 신뢰가 드러날 수 있다.

또한 이 장면은 겸손의 힘을 드러낸다.

여인은 자격을 주장하지 않았다. 은총을 요구했을 뿐이다.

신앙은 내가 받을 만하다고 증명하는 태도가 아니라,

당신의 자비면 충분하다고 고백하는 태도다.

 

그리고 이 장면은 사랑의 본질을 보여준다.

어머니는 자신의 명예를 지키려 하지 않았다.

오직 딸의 회복만을 구했다.

사랑은 자신을 낮추게 하고, 낮아진 자리에서 기적이 시작된다.

 

우리는 종종 큰 기적, 눈에 띄는 응답만을 기다린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은 때로 부스러기처럼 보이는 자리에서 시작된다.

작은 위로의 말,

미약한 변화,

조용한 회복.

그것이 상 아래에서 시작되는 부스러기식 구원의 방식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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