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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경 말씀] 사랑과 두려움

제임스
2026-01-06 21:51 2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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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 1서 4,11-18을 읽으며 —
식품을 다루는 사람에게 가장 익숙한 단어 가운데 하나는 ‘흡수’다. 아무리 좋은 영양소라도 흡수되지 않으면 몸을 살리지 못한다. 분석표에 적힌 수치가 아무리 훌륭해도, 실제로 세포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그것은 정보에 불과하다. 요한 1서의 말씀을 읽으며, 나는 이 ‘흡수’라는 개념이 사랑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한은 말한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렇게 덧붙인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십니다.”

식품인의 언어로 옮기면 이렇다.
사랑은 성분표에 적힌 원료가 아니라,
몸 안에서 작동하는 기능성 물질이다.
존재를 아는 것과, 실제로 작동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식품에서도 흔히 보는 장면이 있다. 어떤 물질은 시험관에서는 탁월한 효과를 보이지만, 인체에서는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 흡수율이 낮거나, 다른 성분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기능을 잃기 때문이다.

신앙도 비슷하다. 머리로는 하느님의 사랑을 잘 안다.
교리적으로도, 신학적으로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삶에서 작동하지 않는다면, 아직 ‘흡수되지 않은 사랑’일 가능성이 크다.

요한이 반복해서 사용하는 표현은 “머무르다”이다.
이는 식품으로 치면, 잠깐 혈중 농도가 올라갔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항상성 속으로 들어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상태에 가깝다.
사랑은 순간적인 감정의 스파이크가 아니라, 몸과 마음의 기본 대사로 자리 잡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이 지점에서 요한은 사랑과 두려움을 대비시킨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식품인의 눈으로 보면, 두려움은 일종의 스트레스 반응이다.
과도한 스트레스는 소화를 방해하고, 흡수를 저해하며, 결국 몸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어도, 불안과 긴장 속에서는 제대로 영양이 되지 않는다.
신앙에서도 마찬가지다. 벌에 대한 두려움, 평가받는 것에 대한 불안 속에서는 사랑이 충분히 작동하기 어렵다.
요한은 두려움을 이렇게 규정한다.
두려움은 벌과 관련됩니다.”
이는 신앙을 보상과 처벌의 시스템으로 이해할 때 생기는 부작용이다.

식품을 ‘몸을 살리는 먹을거리’가 아니라 ‘잘못 먹으면 벌을 받는 위험물’로만 본다면,
식사는 늘 불안의 시간이 될 수밖에 없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낸다고 요한은 말한다. 이것은 두려움이 사라지도록 애쓰라는 명령이 아니다. 사랑이 충분히 작동하면, 두려움이 설 자리를 잃는다는 결과의 진술에 가깝다. 마치 몸이 건강해지면 잦은 경고 신호가 자연스럽게 줄어드는 것처럼 말이다.

요한이 말하는 사랑의 완성은, 흠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그분처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방향의 문제다. 완벽한 영양 균형이 아니라,
몸을 살리는 쪽으로 꾸준히 작동하는 대사 흐름이다.

식품인의 시선에서 보면, 이 말씀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하느님의 사랑은 분석 대상이 아니라, 삶에서 작동해야 할 기능이다.
두려움은 아직 흡수되지 않았다는 신호이며,
서로 사랑하는 삶은 사랑이 제대로 대사되고 있다는 증거다.

오늘 요한의 말씀은 묻는다.
나는 하느님의 사랑을 ‘알고’ 있는가,
아니면 그 사랑이 내 삶에서 실제로 ‘작동’하고 있는가.

사랑 안에 머무른다는 말은,
신앙이 더 이상 긴장과 불안의 체계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기본 대사가 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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