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경 말씀] 담벼락의 기도 ― 좁은 문 앞에서
-
- 첨부파일 : 333.png (392.8K) - 다운로드
본문
초등학교 시절, 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성당에 가곤 했다.
향로의 은은한 냄새, 맑은 종소리, 경건한 신자들의 모습은 어린 마음에도 신비로웠다.
그러나 중학교 입시가 다가오자 모든 관심이 공부로 쏠렸다.
‘입시가 끝나면 다시 가야지.’
그렇게 마음속으로 다짐했지만, 그 약속은 어느새 마음 한구석에 밀려나 있었다.
시험을 며칠 앞둔 어느 일요일,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도 시험 전에 성당에 가서 기도라도 드려야 하지 않을까?’
그 생각이 들자마자 나는 서둘러 길을 나섰다.
멀리서 십자가가 보이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성당 문 앞에 다다랐을 때, 발걸음이 멈춰 섰다.
문 안으로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는 너무 약삭빠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동안 성당에 가지 않다가 시험을 앞두고 서야 도움을 청하려는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결국 성당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담벼락에 기대고 두 손을 모았다.
그리고 조용히 속삭였다.
“하느님, 지금껏 성당에 다니지 못한 것을 용서해 주세요.
시험에 합격할 수 있다면, 그다음에는 꼭 열심히 다니겠습니다.”
그날 나는 미사에 참여하지 못했지만,
담벼락 너머로 흘러나오는 성가 소리에 큰 위안을 얻었다.
그것은 어린 시절의 순수한 믿음이었다.
두려움과 부끄러움 속에서도
하느님께 마음을 내어 놓았던 한 소년의 진심이었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매주 아무 거리낌 없이 성당에 들어선다.
미사 시간에 맞춰 자리에 앉고, 신자들과 인사를 나누며,
익숙한 전례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몸을 둔다.
그런데 문득, 어린 시절 담벼락에 기대어 있던 그날의 내가
지금보다 더 하느님께 가까웠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때는 감히 문 안으로 들어서지 못했지만,
그 마음에는 순수한 경외와 겸손이 있었다.
지금은 미사에 빠짐없이 참석하지만,
가끔은 그 경외가 습관 속에 묻혀버린 듯하다.
하느님과 가까워졌다기보다,
내 마음이 좀 더 뻔뻔해진 것은 아닐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좁은 문은 언제나 우리 앞에 있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는 일은 쉽지 않다.
세상은 넓은 길을 향해 우리를 유혹한다.
편안하고, 사람들로 북적이며, 인정받는 길이다.
그러나 좁은 문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 문은 겸손의 문이며, 회개의 문이고, 사랑의 문이다.
그 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내려놓아야 한다.
자존심, 욕심, 명예, 미움,
심지어 나 자신의 의로움까지도.
그래서 예수님은 “힘써라”고 말씀하신다.
그 문은 단지 ‘찾는 문’이 아니라, ‘노력하여 들어가는 문’이기 때문이다.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다 해도,
그분의 사랑을 나누지 않았다면
우리는 여전히 문 밖에 서 있는 것이다.
그날 성당 담벼락에서 머뭇거리던 나는,
비록 문 안으로 들어서지는 못했지만
이미 마음의 좁은 문 앞에 서 있었던 셈이다.
그 문턱은 두려움과 부끄러움으로 높아 보였지만,
그때의 기도는 진심으로 하느님을 찾는 첫걸음이었다.
이제 돌이켜보면,
좁은 문은 결코 성당의 입구 만을 뜻하지 않았다.
그것은 내 마음 안의 문이었다.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할 때 닫히고,
자존심 때문에 머뭇거릴 때 닫히며,
나 자신을 의로 여기며 남을 판단할 때 닫힌다.
그리고 그 문이 닫히면,
안쪽의 빛도, 바깥의 바람도 더 이상 들어오지 못한다.
그 어둠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잃는다.
좁은 문은 힘들지만,
그 안에는 새로운 빛과 생명이 기다리고 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문,
겸손히 고개 숙인 이만이 통과할 수 있는 문.
나는 오늘도 그 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서서 묻는다.
“주님, 오늘도 제 마음의 문은 열려 있습니까?”
그리고 어린 시절 담벼락에서의 기도를 떠올리며
조용히 성호를 긋는다.
그때처럼 순수하고 진심으로,
다시 한 번 좁은 문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닫힌 문은 두려움이었지만,
그 너머에는 언제나 기다림의 빛이 있었다.”









댓글목록0
댓글 포인트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