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10.18)의 제1 독서 말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드는 세상 : 이사야서 (2,1-5)
제임스
2026-10-17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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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우리가 매일 먹는 한 그릇의 밥이 식탁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손길이 필요할까.
농부가 땅을 갈고 씨앗을 뿌리면 햇빛과 물, 토양의 양분을 받아 곡식이 자란다.
수확한 곡식은 가공과 저장, 유통의 과정을 거쳐 우리의 식탁에 오른다.
수확한 곡식은 가공과 저장, 유통의 과정을 거쳐 우리의 식탁에 오른다.
이 모든 과정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려면 무엇보다 평화로운 환경이 필요하다.
전쟁이 일어나면 농토가 황폐해지고 생산과 유통이 중단된다.
사람들은 먹을 것을 잃고 굶주림에 시달린다.
사람들은 먹을 것을 잃고 굶주림에 시달린다.
식품을 연구해 온 사람으로서 평화의 의미를 생각할 때면,
평화란 사람들이 안심하고 씨앗을 심고 곡식을 거두어 함께 식탁에 앉을 수 있는 세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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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사야 예언자는 바로 그러한 세상을 놀라운 모습으로 보여 준다.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칼과 창은 사람을 해치는 무기이고, 보습과 낫은 땅을 일구고 곡식을 거두는 농기구다.
같은 쇠붙이지만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생명을 파괴하는 도구가 되기도 하고 생명을 기르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같은 쇠붙이지만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생명을 파괴하는 도구가 되기도 하고 생명을 기르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이사야가 보여 주는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멈춘 상태가 아니다.
사람을 해치던 힘을 생명을 살리는 힘으로 바꾸는 세상이다.
사람을 해치던 힘을 생명을 살리는 힘으로 바꾸는 세상이다.
이 말씀은 과학기술을 연구해 온 사람에게 특별하게 다가온다.
인류는 놀라운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왔다.
식량 생산과 가공, 저장기술의 발전은 더 많은 사람에게 안전하고 영양가 있는 식품을 공급할 수 있게 하였다.
식량 생산과 가공, 저장기술의 발전은 더 많은 사람에게 안전하고 영양가 있는 식품을 공급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같은 과학기술이 더욱 강력한 무기를 만드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기술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디에 사용하느냐는 인간의 선택이다.
과학의 진정한 가치는 얼마나 뛰어난 기술을 개발했는가보다
그 기술로 얼마나 많은 생명을 살리고 고통을 줄였는가에 있을 것이다.
이사야는 이러한 평화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도 알려 준다.
“그분께서 당신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시어 우리가 그분의 길을 걷게 되리라.”
칼을 보습으로 바꾸는 일은 단순히 도구를 바꾸는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마음과 가치관이 먼저 달라져야 가능한 일이다.
하느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길을 걸을 때,
우리는 자신의 능력을 다른 사람을 이기는 데 사용하기보다 함께 살아가는 데 사용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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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 연구도 마찬가지다.
더 맛있고 편리한 식품을 만드는 일도 중요하지만,
영양이 부족한 사람에게 필요한 식품을 제공하고,
식품 폐기물을 줄이며, 누구나 안전한 먹거리를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일 역시 중요하다.
우리가 개발한 기술이 사람들의 건강을 지키고 굶주림을 줄이는 데 기여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과학을 통해 생명을 섬기는 일이 아닐까.
이사야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준다.
“모든 민족들이 그리로 밀려들고 수많은 백성들이 모여 오면서 말하리라.”
서로 다른 민족들이 주님의 산으로 모여 함께 하느님의 가르침을 배우는 모습이다.
여기에는 어느 한 민족만을 위한 평화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누리는 평화의 이상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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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도 이러한 의미가 있다.
서로 언어와 문화가 다른 사람들도 한 식탁에 앉아 음식을 나누면서 마음의 거리를 좁힐 수 있다.
음식은 배고픔을 해결하는 수단인 동시에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는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 곳곳에서는 아직도 전쟁과 빈곤으로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식량을 생산할 기술과 능력이 있어도 평화가 무너지면 그 식량을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하기 어렵다.
한쪽에서는 식량이 남아 버려지고 다른 쪽에서는 굶주리는 현실을 바라보면,
풍요로운 세상에 필요한 것은 생산기술뿐 아니라 나누려는 마음과 평화로운 질서임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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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오늘 이사야의 말씀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것일까.
세상의 전쟁을 멈추는 일은 개인의 힘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 마음속에도 칼과 창이 있다는 사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상대방을 상처 입히는 날카로운 말,
오래 품어 온 원망,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는 고집이 그것이다.
오래 품어 온 원망,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는 고집이 그것이다.
이러한 마음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 역시
우리 안의 칼을 보습으로 바꾸는 일일 것이다.
우리 안의 칼을 보습으로 바꾸는 일일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무엇을 더 이루었는가보다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을 누구를 위해 사용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을 누구를 위해 사용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오랫동안 식품을 연구하고 학생들을 가르쳐 온 시간도
결국 사람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데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결국 사람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데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이사야는 마지막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야곱 집안아, 자,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
주님의 빛 속을 걷는다는 것은 평화로운 세상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오늘 내가 살아가는 자리에서 평화를 선택하고 실천하는 일일 것이다.
오늘 내가 살아가는 자리에서 평화를 선택하고 실천하는 일일 것이다.
전쟁은 사람의 손에 칼을 쥐게 하지만, 평화는 그 손으로 씨앗을 심고 빵을 나누게 한다.
식품 연구자의 눈으로 바라본 이사야의 환시는 결국 생명을 위한 초대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세상은 인간이 더 강력한 무기를 만드는 세상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생명의 양식을 나누며 함께 살아가는 세상일 것이다.
모든 사람이 생명의 양식을 나누며 함께 살아가는 세상일 것이다.
오늘도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이 누군가를 이기는 칼이 아니라,
생명을 기르고 평화를 나누는 보습과 낫이 되기를 기도한다.
생명을 기르고 평화를 나누는 보습과 낫이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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