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10.13)의 독서 말씀]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이 참된 자유다 :갈라티아서 (5,1-6)
제임스
2026-10-12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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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많은 규칙과 제도 속에서 생활한다.
학교에서는 학칙을, 직장에서는 규정을, 사회에서는 법과 질서를 준수한다.
이러한 규칙은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규칙을 잘 지킨다고 해서 반드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교통법규를 철저히 지키면서도 다른 운전자에게 양보하지 않을 수 있고,
직장에서 규정을 준수하면서도 어려운 동료를 외면할 수 있다.
규칙을 지키는 것과 그 규칙이 지향하는 정신을 실천하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이러한 문제를 신앙의 관점에서 이야기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런데 바오로는 곧이어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경고한다.
당시 일부 갈라티아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할례와 율법을 지켜야만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바오로는 이런 생각을 강하게 반대한다. 그리스도께서 베풀어 주신 은총보다
인간이 율법을 얼마나 완벽하게 지켰는가에 의지하려 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규칙을 무시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자유가 아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공로를 증명해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는 자유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미사에 참여하고 기도하며 여러 봉사활동을 한다. 모두 소중한 신앙의 실천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외적인 형식과 경력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다.
얼마나 오랫동안 성당에 다녔는가,
얼마나 많은 봉사를 했는가,
어떤 직책을 맡았는가를 신앙의 깊이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
그렇게 된다면 나는 다시 스스로 멍에를 메는 셈이다.
바오로는 오늘 말씀의 마지막에서 신앙의 핵심을 분명하게 밝힌다.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믿음은 단순히 하느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 믿음이 나의 행동을 변화시키고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드러나야 한다.
아무리 열심히 기도하더라도 어려운 이웃을 외면한다면 그 기도의 의미는 상실된다.
오랫동안 봉사했다고 자부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자신의 의견만 고집한다면
그 봉사가 과연 사랑에서 비롯된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믿음의 가치는 얼마나 많은 종교적 행위를 했는가보다
그 행위를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랑을 실천했는가에 있다고 본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러한 말씀이 더욱 깊게 다가온다.
젊었을 때에는 연구 성과와 직책, 사회적 인정이 중요했다. 그러나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
내가 남긴 업적보다 사람들과 나누었던 따뜻한 마음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어려울 때 내게 손을 내밀어 준 사람,
아무런 보상 없이 도움을 주었던 사람,
나의 부족함을 이해하고 기다려 준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들이 보여 준 사랑이야말로 어떤 훌륭한 말보다 깊은 가르침이었다.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는 우리 자신이 얼마나 많은 직책을 맡았는가보다
그 자리에서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바라보실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란 무엇일까.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봉사하고,
의무감 때문만이 아니라 감사하기 때문에 기도하며,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이웃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자유일 것이다.
참된 자유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과 욕심에서 벗어나 기꺼이 사랑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 앞에서 나는 신앙생활에서 오랫동안 지켜 온 형식과 경력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아니면 그 안에서 실천해 온 사랑을 더 소중히 여기는가.
혹시 하느님께서 이미 베풀어 주신 은총을 잊고 자신의 공로를 증명하려는 부담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케 보게 된다.
신앙의 성숙은 더 많은 의무를 짊어지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받은 사랑을 더욱 자유롭고 기쁜 마음으로 나누는 데 있다.
하느님께서 주신 자유는 사랑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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