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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10.10)의 독서 말씀]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를 입은 사람들 : 갈라티아서 (3,22-29)

제임스
2026-10-09 21:48 1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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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자연스럽게 서로를 구분하게 된다. 나이가 많은 사람과 젊은 사람, 직책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 많이 배운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구별한다.

그런데 이러한 구분이 어느 순간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오랫동안 대학에서 생활하면서 직책이나 학위에 따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모습을 보아 왔다. 그러나 함께 일해 보면 직책이 높다고 반드시 훌륭한 사람인 것도 아니고, 배움이 적다고 지혜가 부족한 것도 아니다.

은퇴하고 나면 자신을 설명해 주던 직함도 하나둘 사라진다.

그때 비로소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직책과 경력을 모두 내려놓고 나면 나는 어떤 사람으로 남는가?”

오늘 바오로 사도는 이 질문에 중요한 답을 들려준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바오로는 먼저 율법의 역할을 설명한다.

율법은 구약시대의 사람들을 지켜 주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감시자 역할을 하였다.

어린아이가 성장하는 동안 부모의 보호와 규칙이 필요하듯이,

율법도 사람들이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깨닫도록 도와주었다. 그러나 사람이 성장하면 단순히 감시 받기 때문에 

규칙을 지키는 단계를 넘어 그 의미를 이해하고 스스로 실천하게 된다.

“믿음이 온 뒤로 우리는 더 이상 감시자 아래 있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도덕적 책임이 없어졌다는 뜻이 아니다. 이제는 처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을 깨달았기에 그 뜻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의무감으로 미사에 참석하고 기도할 수 있다. 그러나 믿음이 깊어지면
미사는 하느님을 만나는 기쁨이 되고
, 기도는 그분과 나누는 대화가 된다.

신앙은 성숙해야 하기에 사는 삶에서, 사랑 때문에 기꺼이 실천하는 삶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어지는 바오로의 말씀은 더욱 놀랍다.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

당시 사회에서 민족과 신분, 성별은 사람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었다.

그런데 바오로는 그 모든 구분을 넘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고 선언한다.

이는 서로의 차이가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다.

차이가 존재하더라도 그 차이가 하느님 앞에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결정하지 못한다.

우리의 공동체도 돌아보면, 성당에는 오랫동안 봉사한 사람과 새로 나온 사람이 있고, 중요한 직책을 맡은 사람과 조용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하느님 앞에서 누구의 믿음이 더 귀한지를 직책이나 봉사 경력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오히려 처음 성당에 나온 사람에게 따뜻한 인사를 건네고, 소외된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작은 행동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 라고 말했다.

바오로의 이 표현이 특별히 마음에 와닿는다.

우리가 입는 옷은 때로 신분이나 직업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입었다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이름이나 소속을 얻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제 우리의 말과 행동을 통해 그리스도의 모습이 드러나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스도를 입었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차별한다면 우리가 입은 옷과 실제 삶이 어긋나는 셈이다. 그리스도를 입은 사람이라면 상대방의 직책보다 인격을 먼저 바라보고, 능력보다 존엄을 존중하며,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배제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무엇을 이루었는가보다

어떤 사람으로 남을 것인가가 더욱 중요하게 다가온다.

언젠가는 직책도 명예도 내려놓아야 한다.

그러나 하느님의 자녀라는 신분은 세상의 직책처럼 임기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나는 사람을 만날 때 그가 가진 직책과 배경을 먼저 보는가,

아니면 하느님의 사랑을 받을 소중한 사람으로 바라보는가.

나는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를 입었다고 고백하면서

실제 생활에서도 그리스도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가.

하느님 앞에서 우리를 귀하게 만드는 것은 세상이 붙여 준 이름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입은 옷은 언젠가 낡고, 세상이 붙여 준 직함은 사라지지만,

그리스도를 입은 사람으로 살아간 흔적은 이웃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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